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최후의 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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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찬〉 – 박성진 시인
떡을 찢는 순간
어둠도 조용히 입을 벌렸다
포도주엔 아직
피가 되지 못한 시간이 잠들고
누군가는 손을 물에 씻고
누군가는 눈빛을 내리깔았다
"너희 중 하나"
그 말 한마디에
세상이 숟가락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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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 “빛과 배신, 그리고 인간의 연극: 다 빈치의 성만찬에 대한 시적 해석”
박성진 시인의 〈최후의 만찬〉은, 단지 한 끼의 저녁을 묘사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비극이 식탁 위에 펼쳐진 순간’을 시적으로 응축한 기록이다. 이 시는 신학적 상징과 예술사적 맥락을 동시에 짚으며, 다 빈치의 역사적 걸작을 오늘의 인간성 탐구로 확장시킨다.
● 1. “떡을 찢는 순간 / 어둠도 조용히 입을 벌렸다”
여기서 '떡'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기독교의 성찬(Eucharist)에서 떡은 곧 ‘몸’이며, 찢긴 떡은 ‘희생’을 상징한다. 예수는 자신이 찢어질 것을 알고 떡을 나누었다. 그 순간 “어둠도 입을 벌렸다”는 구절은 **요한복음 13장 30절 “그가 곧 나가니 밤이러라”**를 상기시키며, 유다가 나가 배신을 실행하는 순간을 암시한다. 시인은 회화 너머의 ‘정신적 암흑’을 한 줄의 시어로 응축한다.
● 2. “포도주엔 아직 / 피가 되지 못한 시간이 잠들고”
다 빈치의 식탁 위에 놓인 잔은 아직 고요하다. 포도주는 곧 피로 변화되지만, 그 시간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이 시는 시간의 잠복, 즉 구속의 예고와 실현 사이의 틈을 바라본다. 이 틈은 예수의 인간적인 고뇌와 신적인 순명을 동시에 포착하는 영역이다.
● 3. “누군가는 손을 물에 씻고 / 누군가는 눈빛을 내리깔았다”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인다. 유다는 몸을 움츠리고, 베드로는 격분하며, 요한은 슬픔 속에 눈을 감는다. 손을 씻는 이—이는 빌라도의 손 씻음을 떠올리게 하며, 책임의 회피를 상징하고, 눈빛을 피하는 이들은 내면의 죄의식 또는 두려움을 암시한다. 시인은 각 제자의 심리극을 단 네 행으로 정지된 시간 안에 소환해 낸다.
● 4. “'너희 중 하나' / 그 말 한마디에 / 세상이 숟가락을 멈췄다”
예수의 한 마디는 시간이 멈추는 기점이다. 그 말은 고요한 저녁 식탁을 윤리적 심판의 법정으로 바꾼다. 그 순간은 그림에서도 보이듯, 일제히 모든 제자들이 경악, 충격, 분노, 회피 등의 표정을 짓는다. 다 빈치는 그 찰나의 움직임을 살아있는 구성으로 새겼고, 시인은 그 정적을 ‘숟가락이 멈춘’ 시간으로 표현함으로써 인간 내면의 정지된 양심을 환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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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적 해석과 미술사적 재조명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단순한 성서 그림이 아니다. 그는 예수와 제자들의 '순간 심리'를 묘사하기 위해 실험적 구도를 도입했다. 인물들은 동일 선상에 있으며, 세 인물씩 네 그룹으로 나뉘어 격렬한 감정의 파동을 구성한다. 이 회화는 르네상스 회화의 인문주의적 전환점이며, 동시에 인간 내면의 ‘종말론적 고백’을 시각화한 작업이다.
박성진 시인은 바로 이 ‘고백’을 시의 언어로 다시 기록했다.
그는 다 빈치처럼 신의 말씀과 인간의 흔들림 사이를 섬세하게 짚으며, 한 끼 식사가 얼마나 격렬한 인간 드라마가 될 수 있는지를 재현한다. 시는 질문한다.
> “이 식탁은 지금, 어디서 다시 펼쳐지고 있는가?”
우크라이나의 참호 안일 수도 있고, 한국의 분단선 너머일 수도 있다. 아니면 오늘 우리의 저녁 식탁 위, 양심과 침묵이 마주 앉은 바로 그 자리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