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미도 아픔의 영혼》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by 박성진

실미도 아픔의 영혼들



《실미도, 아픔의 영혼》


– 박성진 시인


> 아무도 찾지 않는 섬이었다

파도가 감추고, 바람이 묻은 이름

지워진 지도로도 갈 수 없는

잊힌 시간 속의 실미도


나는 사람 아닌 사람으로

훈련이라 부른 고통을 견디고

나라의 명령이라는 침묵 아래

총검을 품은 짐승이 되었다


그날, 바다는 검었다

떠나야 할 곳은 육지였고

돌아갈 곳은 없었다

우리는 국가였으나,

국가는 우리를 기억하지 않았다


형제여, 전우여, 이름도 없이 쓰러진

너의 눈빛은 아직 나를 본다

불붙은 트럭과 함께 사라진

청춘의 울음은 아직도 실미도를 맴돈다


나는 다시 묻는다

누구를 위해 칼을 들었는가

무엇이 우리를 이 섬에 가두었는가

바다여, 대답하라

우리가 흘린 피는 누구의 것이었는가


이제야 사람들이 찾는다

관광지 된 이 무덤의 섬을

그러나 그 누구도 묻지 않는다

“그들은 왜 죽었는가”

그 누구도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실미도,

이름 없는 무덤 위에 바람이 운다

오늘도 그날처럼

침묵은 총알보다 깊은 상처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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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 박성진 칼럼니스트 / 현대시비평


이 시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어두운 그림자인 **‘실미도 사건’**을 문학적으로 수렴한 대표적 진혼시로, 망각과 침묵의 정치 속에서 지워진 존재들의 목소리를 시적으로 복원하려는 시도다.

1. 공간의 역사적 은유


“아무도 찾지 않는 섬”, “지워진 지도”라는 표현은 단순한 지리적 외로움을 넘어, 국가적 기획 속에 존재 자체를 지워버린 비공식적 역사를 암시한다. 실미도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경계선 밖에 존재했던 비인간적 실험의 장소로 재현된다.


2. 인간이 아닌 존재로서의 훈련병


“사람 아닌 사람”, “총검을 품은 짐승”이라는 표현은 인간 존엄의 박탈과 군사기계화의 비극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는 민간인을 특수부대로 전환하는 과정 자체가 국가폭력의 구조적 실체임을 고발하는 것이다.


3. 집단기억의 부재와 국가의 외면


“우리는 국가였으나, 국가는 우리를 기억하지 않았다”는 진술은 서정적 탄식 이상의 역사적 고발문이다. 생존자와 희생자가 동시에 사라진 공간에서, 국가는 침묵했고, 그 침묵은 곧 가해자의 언어 부재이자 ‘부정의의 공범’으로 기능한다.


4. 질문과 증언의 시적 전환


“누구를 위해 칼을 들었는가” “무엇이 우리를 가두었는가”라는 반복적 질문은, 시적 리듬을 넘어 윤리적 증언의 형식으로 작용한다. 이는 단지 과거를 묻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향해 묻고 있으며, 독자에게도 이 역사적 비극의 책임을 공유하도록 요구한다.


5. 침묵의 미학이 아닌 침묵의 상처


마지막 연 “침묵은 총알보다 깊은 상처”는 시 전체의 미학적 결론이자 윤리적 경고문이다. 말해지지 않은 역사, 기록되지 않은 존재, 잊힌 진실은 문학을 통해서라도 끌어올려야 한다는 시인의 태도는, 침묵을 미화하지 않는 비판적 리얼리즘으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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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박성진 시인의 이 작품은 ‘실미도’라는 특정 사건을 넘어, 국가 폭력의 이름 없는 희생자들을 향한 진혼이자 문학적 복권이다. 서정은 절규로, 침묵은 증언으로 전환되며, 시인은 역사의 목격자이자 대변자가 된다. 이 시는 기억하지 않는 국가를 향해, 말하지 못한 이들을 대신해 문학이 최후의 항변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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