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파리의 여름, 한국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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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이 없는 파리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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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시인
루브르의 돌벽엔
바람조차 쉬이 들지 못한다
모네의 햇살도
땀방울 사이로 녹아내리고
에펠탑의 그늘 아래
노인은 부채 대신
혁명의 기억을 펼친다
“우린 유적 속에 산다네”
그 말이
땀에 젖은 셔츠를 자부심으로 바꾸고
고흐의 열병 같은
남프랑스의 태양은
냉방 대신 그림으로 식혔다
프랑스의 여름은
불편하지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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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우리 집엔
리모컨이 주인이고
4계절 창문은 밀폐되어
에어컨의 바람은
눈물도 말려버리고
속삭임조차 냉랭하다
시원한데
어쩐지 뜨겁다
냉방 속에서도 숨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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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득
에어컨 없는 파리를
에어컨보다 선풍기 하나로 버티는
낡은 창틀의 파리 시민을
부럽다 생각했다
덥지만, 그들은 살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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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해설
이 시는 프랑스의 낮은 에어컨 보급률과 문화적 특수성,
그리고 한국의 과도한 냉방 문화 사이에서
‘불편 속의 우아함’과 ‘편리 속의 무감각’을 대조합니다.
프랑스는 유적과 전통을 보존하려다 보니
건물 내부의 구조상 에어컨 설치가 어려워
자연스럽게 ‘더운 삶’에 익숙해졌지만,
그 안에 깃든 예술과 자부심은 여름의 더위를 초월합니다.
반면, 한국은 에어컨 보급률이 96%에 이르러
무더위를 완벽히 차단했지만,
오히려 인간적인 온기, 대화, 계절감을 잃고
‘시원하지만 뜨거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 시는 에어컨의 유무를 넘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떤 불편함이 아름다울 수 있는가’에 대한
은근한 물음을 던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