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선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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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도는 시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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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시인
선풍기가 돈다
방 한편에서가 아니다
기원전 수메르에서
기원후 메타버스로
시가 돌아간다
돌판에 새긴 신의 찬가
양피지에 피로 쓴 절규
활자의 성서와
광속의 전자책
그 모든 시의 꿈이
회전 날개 끝에 걸렸다
돌면서 시는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누구를 향해 바람을 보내는가
종이 위의 시간은 멈췄지만
날개는 멈추지 않는다
미래로 미는 시
희망과 저항과 눈물의 언어
나는 이제 안다
선풍기의 중심엔
고요한 혼돈,
그 안에 시의 심장이
쿵쿵,
역사를 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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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해설:
이 작품은 ‘선풍기’라는 물리적 회전 장치를 역사 속 시의 순환성과 시간적 진화를 상징하는 철학적 장치로 재구성한 시입니다.
1연은 선풍기의 움직임을 단순한 실내의 바람이 아니라, 문명의 시작과 미래까지 연결하는 시의 궤도로 확장합니다.
2연에서는 고대 수메르의 점토판, 중세의 양피지, 근대 활자 인쇄물, 그리고 디지털 시대 전자책까지 시의 매체가 선풍기의 회전과 함께 시대를 관통합니다.
3연에서는 시 자체가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며, 독자와의 대화를 시도합니다.
4연과 5연에서는 ‘날개’와 ‘심장’을 통해 시가 단순히 글이 아니라 역사를 움직이는 감정과 정신의 심장임을 강조합니다.
이 시는 “돌고 도는 것의 의미”를 단순한 반복이 아닌 진화하고 꿈꾸는 시의 원동력으로 해석하며, 오늘날 우리가 읽는 시 또한 오랜 회전의 한 소용돌이 속에 있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