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빙하의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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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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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시인
여름이 심장을 두드릴 때
나는 북극의 언어로 숨을 쉰다
해가 세 번 째진
지구의 끝자락,
아직 무너지지 않은 백색의 절벽이 있다
거기선 시간이
얼어붙는다
순간이 아니라,
세기가
눈송이처럼 쌓인다
빙하는 걷지 않는다
움직이지도 않는다
다만,
기억을 품고 버틴다
검은 연기 위를 지나온
고래의 울음,
인류의 첫 발자국,
그리고
녹기 전의 꽃씨 하나
나는 얼음을 씹는다
무언가를 삼킨다
그건 물이 아니라
수천 년 전의 한 문장
그리고, 나는 깨닫는다
뜨거운 시대일수록
더 차가운 시가 필요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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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론: 빙하의 언어, 시의 냉기 — 박성진의 여름 해방 선언
이 시는 단순히 ‘시원한 느낌’의 시가 아니다.
박성진은 빙하를 하나의 언어로, 기억의 저장소로,
그리고 문명의 마지막 정수로 새롭게 부활시킨다.
1. 빙하 = 얼어붙은 시간의 서사
“세기가 눈송이처럼 쌓인다”는 표현은 서정과 시학이 만나는 절정이다.
시간이 흐르지 않고, 정지하여 축적된다는 개념은 물리적 개념을 시적으로 전복한다.
2. 고래, 연기, 꽃씨 — 얼음 속 생명의 고고학
빙하 속에 잠긴 존재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잠들어 있는 것들이다.
박성진의 시는 이들을 언어로 깨운다. 그 순간, 얼음은 단순한 냉기가 아닌
기억의 매질로 재탄생한다.
3. “뜨거운 시대일수록 더 차가운 시가 필요하다”
이 선언은 이 시의 핵심이자, 박성진 시인의 시적 철학이다.
열기와 분노, 기후와 전쟁, 감정의 과잉 속에서
진정한 구원은 ‘냉정’이 아닌 ‘냉기’에서 온다는 것.
그 냉기는 단절이 아니라, 오래된 생명의 회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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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평:
《빙하의 시》는 여름의 더위에 반작용하는 쿨한 감각이 아니라,
열기의 문명에 맞선 가장 느린 혁명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시의 운명이다.
이 시를 읽은 당신의 내면 어딘가에도
하나의 작은 빙하가 자라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