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달빛 아래 첫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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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 박성진 각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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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황진이 시인, 김은심 시인
1막 ― 달빛 아래 첫 만남
한여름밤.
솔숲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바람은 낮 동안의 더위를 씻어내듯 시원하게 흐른다.
연못 위엔 달빛이 살짝 부서지고,
별빛은 하늘에서 쏟아질 듯 빽빽하다.
멀리 선 개구리 합창단이 “개굴~ 사랑해~” 하며 노래하고,
매미는 여름의 마지막 연가를 부른다.
솔바람 사이로는 살짝 송진 냄새가 섞인 여름밤의 향기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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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 등장
연못가 한쪽, 달빛이 스며든 숲길에서 황진이가 나타난다.
치맛자락은 달빛을 머금어 은빛 물결처럼 흔들린다.
머리에는 별빛 머리핀이 반짝이며,
걸음마다 솔잎이 사각사각 소리를 낸다.
황진이 (혼잣말)
“아이고, 이 여름밤 좀 보소…
별이 천 개, 만 개, 세지도 못하겠네.
임은 또 안 오고,
밤마다 별만 내 연애편지처럼 내려다보네.
내 가슴은 아직도 스물인데
사랑 한 번 맘껏 못 해 보고
별이랑 연애하는 신세라니…
참, 팔자도 팔자구먼.”
황진이는 연못가 바위에 털썩 앉는다.
손가락으로 물을 휘휘 저어 보니
별빛이 반짝이며 춤을 춘다.
물방울 몇 개가 얼굴에 튀어 시원하게 식혀준다.
황진이 (장난스럽게)
“얘, 별아!
너 오늘도 내 연애편지 맞지?
밤마다 찾아와 반짝거리는 건 좋은데
한 번쯤은 내 품에 안기면 안 되겠니?”
그녀는 연못 위로 손을 뻗어 별을 잡으려 한다.
그러나 물결만 찰랑거리고
별빛은 손가락 사이로 도망간다.
황진이 (웃으며)
“아이고, 또 도망갔네.
이래서 내가 술을 마시며
별을 삼킨다 하지 않았던가.
별도 나를 보고 부끄러운 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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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심 시인 등장
그때, 솔숲 사이로 바람에 실린 발자국 소리가 난다.
흰 원피스 자락이 달빛에 젖어 은은하게 흔들리고,
조용한 목소리가 숲 속에 번진다.
김은심 시인
“밤이 참 깊네요…
솔향기와 연못 냄새가 이렇게 좋을 줄 몰랐어요.
오늘은 시집 대신, 제 마음을 들고 왔답니다.”
황진이는 눈을 크게 뜬다.
낯선 여인이 달빛 아래 서 있었다.
머리칼은 솔바람에 흔들리고,
눈빛은 별빛처럼 맑았다.
황진이
“어머나, 오늘은 별도, 사람도 다 모였네.
낯선 여인, 누구시오?
혹시 나랑 별 보러 온 벗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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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인사와 장난
김은심 시인
(살짝 고개 숙이며)
“저는 시를 쓰는 김은심이라고 해요.
별빛을 시로 묶어두고 싶은 마음에 나왔어요.”
황진이
“시인이라! 아이고 반가워라.
나는 황진이라 하오.
조선 팔도 떠돌며 사랑 노래 부르던 여인인데
오늘은 이 연못이 내 무대요.
별빛이 조명이고, 솔바람이 내 반주지.”
황진이는 치맛자락을 살짝 들어
빙그르르 한 바퀴 돌며 춤을 춘다.
솔숲 그림자까지 달빛을 받아 출렁이고,
연못 위의 별빛도 따라 흔들린다.
김은심 시인
“황진이 님… 정말 전설 속에서만 뵐 줄 알았는데
이렇게 별빛 아래서 만나니, 운명이네요.”
황진이
“운명 맞지!
별빛이 오늘 우리를 소개해 준 거라오.
근데 시인님 얼굴이 참 맑네.
혹시 별빛 세숫물로 세안하고 오셨소?”
김은심 시인
(웃으며)
“아니에요.
저는 솔숲 바람으로 머리를 말리고,
기도로 마음을 씻고 나왔어요.
밤이 너무 아름다워서… 시를 쓰고 싶었거든요.”
황진이는 손뼉을 치며 배를 잡고 웃는다.
연못의 개구리들이 화답하듯
“개굴~ 개굴~” 노래를 맞춘다.
황진이 (웃음 섞인 목소리)
“하하! 시인들은 참 별나.
나는 옛날에 기도할 때도 ‘임이나 내려주소서’ 했는데
시인님은 별빛에 시를 달라 했구먼.
좋아! 오늘 밤은 시랑 사랑이랑 별이랑
한판 제대로 놀아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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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별빛 동맹
두 여인은 연못가 바위에 나란히 앉는다.
멀리 은하수가 흐르고,
별빛이 머리 위에서 속삭인다.
솔바람은 부드럽게 머리칼을 흔들며
여인의 향기를 숲 속에 퍼뜨린다.
김은심 시인
“황진이 님, 이 별들 보니까 마음이 설레죠?”
황진이
“설렘이라니… 내 가슴은 아직도 스물이라오!
저 별 하나하나가 다 내 연애편지요.
근데 시인님, 오늘 밤 그대도 별과 연애하러 온 거요?”
김은심 시인 (살짝 고개 끄덕이며)
“네… 하지만 오늘은 별보다 황진이 님을 만나러 온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제 시에도 웃음과 향기가 필요하거든요.”
황진이는 부채를 펴서 김은심 시인에게 건네며 능청스럽게 말한다.
황진이
“그럼 나랑 놀아보자고!
오늘 밤은 별빛과 우리 둘이 주인공이요.
별들은 손뼉 치고, 솔숲은 북 치고,
연못은 춤을 추고, 개구리는 합창단!”
별빛이 연못에 와르르 쏟아진 듯 흔들리고,
두 여인의 웃음소리가 한여름밤을 가득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