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쿤은 한 편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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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한 편의 시 — 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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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 박성진 시
눈이 내린다
하늘은 한 장의 흰 종이를 내리고
나는 그 위에 첫 시를 쓴다
별빛조차 멈춘 설국의 정거장
눈의 열차가 우주를 무음으로 달리고
요정들은 침묵 속에서 티켓을 건넨다
한 모금의 아침이슬을 들고
파란 장미가 피어 있는 창가에 앉으면
겨울의 카페가 작은 천국이 된다
그러나 저 멀리 모로코의 아이는
오늘도 흙먼지 속에서 빵을 굽는다
할아버지의 주름진 손은
지진의 균열처럼 깊고 아프다
눈의 시는 묻는다
이 흰 평화가 저 먼 곳에도 내릴 수 있는가
내 이슬 한 잔이
그들의 입술까지 닿을 수 있는가
일어나라, 모로코여
세상의 시인들이 오늘
눈발 속에서 함께 시를 읽는다
희고 조용한 눈송이가
당신의 상처를 감싸기를
마지막 눈송이 하나가
내 손바닥에서 녹아
조용히 흘러간다
그 눈물이 흰 시가 되어
하늘과 땅을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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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주 평론
이 시는 원작 〈눈은 한 편의 시〉를 철학적·서정적 곡선으로 재편한 변주다.
눈을 단순한 계절의 풍경이 아닌 흰 종이·시의 탄생·우주의 침묵으로 확장함으로써,
자연과 예술, 존재의 본질을 하나의 시적 공간으로 묶어낸다.
중반부의 “파란 장미가 피어 있는 창가에 앉으면 / 겨울의 카페가 작은 천국이 된다”는
개인적 서정과 안식의 순간을 극대화한 장면이다.
그러나 시선은 곧 모로코의 현실로 전환되며,
“흙먼지 속에서 빵을 굽는 아이”와 “지진의 균열 같은 주름”이라는
구체적 이미지로 인류의 고통을 직면시킨다.
시의 질문은 단순한 연민을 넘어선다.
> “이 흰 평화가 저 먼 곳에도 내릴 수 있는가 / 내 이슬 한 잔이 그들의 입술까지 닿을 수 있는가”
이 물음은 시와 예술의 윤리적 존재 이유를 성찰하게 한다.
마지막 연에서 눈송이가 눈물이 되고,
그 눈물이 “하늘과 땅을 잇는다”는 결말은
개인적 사유가 인류애적 연대로 확장되는 시적 승화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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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눈은 한 편의 시 — 변주〉는 개인적 서정 → 철학적 질문 → 인류애적 결론의 구조를 완성한 작품이다.
눈이라는 자연 이미지가 시인의 내면과 세계적 연민을 동시에 담아내며,
예술이 지닌 치유·성찰·연대의 힘을 은유적으로 구현했다.
시어는 담백하면서도 투명하며, 이미지의 선명도가 높다.
원작의 연설적 어조를 서정적 속삭임으로 바꿔 철학적 울림을 강화했다.
결말부의 눈물과 하늘·땅을 잇는 상징은,
박성진 시인의 시 세계가 지닌 인류애적 윤리와 예술적 사유를 압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