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백석의 시를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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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의 시를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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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칼럼니스트 · 문학평론
백석의 시를 따라 걷는다는 것은 잊힌 고향을, 사라진 말들을, 그 말 안에 숨 쉬던 사람들의 체온을 다시 떠올리는 일이다. 그의 시에는 연민과 서정, 고독과 꿈이 다정하게 섞여 흐른다. 그것은 단지 오래된 기록이 아니다. 지금도 우리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는 ‘사람 사는 냄새’, 말의 뿌리, 풍경의 감촉 같은 것들이 조용히 살아 있다. 그래서 백석의 시는 읽는다는 말보다 ‘같이 숨 쉰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그의 대표작인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떠올려보자. 눈 내리는 골목, 흰 당나귀, 나타샤. 시인은 고단한 현실에서 몽상의 세계로 가볍게 발을 옮기지만, 그 몽상마저도 너무 현실적이다. 그것은 추상적이지 않다. 찬 바람이 살을 스치는 감각, 발자국 소리, 손등의 시림 같은 것들이 모두 살아 있다. 이 시는 결국 사랑의 시가 아니라, 고향을 잃은 자가 꾸는 환상의 서정, 민족적 상실의 심연에 다가가는 노래다.
백석은 고향의 시인이다. 그러나 그 고향은 단지 지리적 공간이 아니다. 그의 시 속 고향은 ‘말’의 고향이다. 그는 사투리와 방언, 아득한 옛말들을 문학의 언어로 되살렸다. ‘솥정이’, ‘기싹하게’, ‘누구 통’ 같은 단어는 백석 시 안에서 낯설지 않다. 오히려 그렇게 불러야만 정확해지는 감정과 풍경이 있다. 그는 언어에 대한 감각이 비범했던 시인이었다. 낡은 말을 살리고, 낯선 말을 살갑게 다듬어 ‘살아 있는 말’로 만들어냈다. 백석의 시는 그래서 ‘말의 박물관’이 아니라, ‘말의 마을’이다.
그의 시를 따라가다 보면, 문득 사라진 풍경 하나가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이 있다. 오래된 장터, 구들장 위의 저녁, 솜이불속 어머니의 숨결, 무연히 피어나는 아지랑이. 그것은 과거의 풍경이지만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다. 백석은 그런 기억을, 우리도 기억하지 못했던 기억처럼 끌어낸다. 그의 시는 지나간 것이 아니라, 돌아올지도 모르는 것들에 대한 예감이다.
그는 시집 『사슴』을 통해, 일제 강점기의 시대 속에서도 가장 조용하고 고운 말로 민족의 심성을 지켜냈다. 도시적 감수성과 향토적 정서를 동시에 품은 이 시집은, 한 시대의 모순과 갈등을 미학으로 끌어안은 결정체였다. 백석은 현실에 침잠하지 않았고, 시를 통해 조용히 항거했다. 그의 시가 격렬하지 않다고 해서 무기력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백석의 시는, 부드러운 물처럼 시간을 감싸며, 가장 깊은 곳까지 스며드는 힘을 지녔다.
백석의 삶은 시보다 더 조용했다. 해방 이후 북으로 간 그의 선택은 여전히 문학사 속 풀리지 않는 매듭이다. 그는 그 이후 긴 침묵에 잠겼고, 남쪽에서는 그의 이름조차 금기처럼 가려졌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침묵은 그의 시를 더 오래 살아 있게 했다. 우리가 지금 백석의 시를 다시 부르며 되새기는 이유는 단지 과거를 회상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다시 말의 뿌리를 찾고, 사람의 마음을 다시 붙잡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의 시 속에는 서러움이 있고, 그 서러움을 아름답게 가다듬는 품위가 있다. 그는 눈물을 흘리되 흐느끼지 않았고, 고통을 말하되 결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그는 끝까지 시인의 품격으로 시대를 견뎠다. 백석은 민족의 시인이라 불릴 수 있지만, 그보다 먼저 ‘사람의 시인’이었다. 그의 시는 위로하고, 기억하며, 기다린다.
오늘, 우리는 너무 많은 말을 너무 빠르게 소비하고 있다. 단어는 낡고, 마음은 메마르며, 문학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듯하다. 그런 시대에 백석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말의 본래 무게를 되찾는 일이자, 시가 어떤 마음을 지켜주는 것인지를 다시 깨닫는 일이다. 그의 시는 떠나간 말들을 되불러오고, 잊힌 마음을 다시 뜨겁게 한다. 백석을 따라 걷는 길은 결국 우리 자신의 말과 마음을 다시 찾는 길이다.
백석의 시는 오래된 등잔불 같다. 거세지 않지만, 밤을 견디게 해주는 불빛. 그 불빛 아래서 우리는 조금 더 사람다워질 수 있다. 백석의 시를 따라서 걷는 오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시가 품었던 따뜻한 시선, 고요한 저항, 그리고 말의 품격이다. 말이 사라지는 시대에, 그는 말의 집을 지은 시인이었다. 우리는 그가 지은 말의 집을 잠시 들러, 마음을 쉬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