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낫을 가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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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문학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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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시
〈낫을 가는 시간〉
아침 이슬이
이랑마다 고요히 맺힐 때
나는 허리를 숙여 벼를 벤다.
햇살 한 줄기가 목덜미를 스치고
땀방울은 흙냄새 속에 스며든다.
그 순간, 마음은 알고 있었다.
힘만으로는
오늘을 다 거둘 수 없다는 것을.
잠시 논두렁에 앉아
풀벌레 소리 속에서 숨을 고른다.
멈춤은 뒤처짐이 아니고
쉬어감은 게으름이 아니다.
날을 세우는 짧은 고요가
내일의 길을 밝힌다.
바람이 얼굴을 식히고
손끝의 낫날은 다시 빛난다.
다시 일어서면
벼보다 먼저, 나는 나를 거둔다.
오늘 하루
잠시의 쉼 속에서
내 마음의 날도
하늘빛처럼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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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 멈춤의 철학, 쉼의 미학
〈낫을 가는 시간〉은 농부의 노동을 빌려, 인생과 휴식의 본질을 은유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첫 연에서 “아침 이슬”과 “고요히 맺힌 이랑”은 하루의 문을 여는 맑은 마음을 그린다. 이 장면은 잠시 멈추어 서서 숨을 고르는 시간이 오히려 하루를 완성한다는 메시지를 암시한다.
둘째 연의 “그 순간, 마음은 알고 있었다”는 구절은 깨달음의 순간을 담고 있다. 힘과 의지만으로는 하루를 완성할 수 없으며, 그 힘을 갈고닦는 여유가 필요함을 시인은 느낀다. 이는 연주 전 악기를 조율하듯, 삶에도 ‘조율의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통찰이다.
셋째 연의 “멈춤은 뒤처짐이 아니고 / 쉬어감은 게으름이 아니다”는 대목은 오늘날 속도에 중독된 사회를 향한 온화한 반론이다. 멈춤은 곧 준비이며, 쉼은 곧 힘을 키우는 과정임을 시인은 분명히 말한다.
넷째 연의 “벼보다 먼저, 나는 나를 거둔다”는 구절에서 시인은 삶의 본질적 수확을 보여준다. 외적인 결실보다 내적인 성찰이 더 큰 열매라는 사실, 그것이 이 시가 던지는 핵심이다.
마지막 연에서 “하늘빛처럼 깊어진다”는 결말은 쉼이 가져오는 마음의 확장을 나타낸다. 쉼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시야를 넓히고 생각을 깊게 만드는 창조적 여백이다.
결국, 이 시는 우리에게 말한다.
빠르게 달릴수록, 잠시 멈추어 날을 갈라고.
그 멈춤이 내일을 더욱 빛나게 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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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훈한 줄
> 멈춤 속에서 갈아낸 날이, 가장 멀리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