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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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 시인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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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선 임
당신은 몇 달을 지혈이 녹아내리도록
그렇게 지지고 볶더니
어디로 가시나요?
온 세상이 가을로 가득 차오르니
기분이 상쾌해집니다
푸른 청춘의 미소가
가을로 물들어갈 때
산과 들은 얼룩무늬 옷을 갈아입고
꽃필 때 맺은 열매는 몸을 드러내고
목청 높이던 매미 소리도 사라졌다
긴 여름 에어컨 선풍기에 기대고 살았는데
하룻밤 사이 코드가 빠져 있고
어젯밤 잠든 손은 베갯머리 개여둔
홑이불을 나도 모르게 끌어당긴다
창문 열기가 두렵던 여름밤
임의 입김이 가득한 가을 향기는
몸동작이 여유로워지고
억새꽃 피어오른 초원 소슬바람은
세상을 돌아선 임의 향기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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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과 존재의
변주곡>
이 시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전환의 순간을 배경으로 삼는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계절의 교체가 아니라, 삶의 국면이 바뀌는 체험을 은유한다.
시 속 화자는 여름이라는 혹독한 시간, 곧 지지고 볶는 듯한 고단함을 통과해 왔음을 고백하였다.
‘지혈이 녹아내리도록’이라는 다소 과장된 표현은,
그 고통이 단순한 더위의 문제가 아니라 육체와 정신의 상처와 피로가 어우러진 상태였음을 보여주었다.
여름은 삶을 잠식하고, 숨을 막히게 하고, 존재를 소진시키는 계절로 등장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여름의 끝자락에 가을이 찾아온다. 상쾌한 바람, 물든 청춘, 무르익은 열매는 떠난 임의 빈자리를 메우며 화자의 감각을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어 간다.
이 시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임’의 의미다. 전통적으로 한국 서정시에서 임은 사랑하는 연인을 뜻하는 경우가 많았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에서 임은 떠나가는 존재이다
시인은 눈물 속에서 꽃잎을 뿌리며 그 이별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여기서의 임은 단순한 연인이라기보다 훨씬 더 다층적이다. ‘지지고 볶던’ 삶의 과정, 그 안에서 부대끼던 인간관계, 혹은 청춘 자체가 임의 자리에 놓인다.
임이 떠난다는 것은, 삶의 한 국면이 지나가고 다른 국면이 열린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시는 단순한 이별 시가 아니라, 존재의 시간적 변화를 노래하는 성찰의 시로 읽힌다.
자연의 풍경은 이러한 존재의 변화를 담아내는 매개체로서 기능한다.
산과 들이 얼룩무늬 옷을 갈아입는 장면은 단순한 묘사가 아니다. 그것은 삶이 제 옷을 바꿔 입는 과정, 다시 말해 인간이 자기 존재의 무늬를 새롭게 짜는 장면을 상징한다. 꽃이 열매로 바뀌는 과정은 고통과 시간의 흔적이 결국 결실로 이어진다는 변증법적 논리를 보여준다.
매미 소리가 사라졌다는 것은 청춘의 한 시절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소리이자, 성숙의 조용한 신호이다. 여름날의 요란함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고요와 결실이 찾아온다.
세 번째 연에서 시인은 생활의 장면을 불러온다.
에어컨과 선풍기에 의존하던 더위의 나날은 끝났고, 코드가 빠진 자리에는 새로운 공기의 흐름이 들어선다.
무심히 개어둔 홑이불을 무의식적으로 끌어당기는 행위는 몸이 계절을 앞서 감지하는 방식이다. 삶은 언제나 몸을 통해 계절을 경험한다. 우리의 감각과 습관은 날씨와 기후에 반응하며, 그 반응 속에서 인간 존재의 유약함과 순응성을 드러내었다.
특히 여기서 주목할 점은, 화자가 자신의 무의식적인 동작을 포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계절의 변화가 단순히 외부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내면 깊숙이 스며들고 있음을 의미한 것이다.
마지막 연에서 시는 전환점에 도달한다. 떠난 임은 더 이상 붙잡을 수 없는 존재이지만, 그 향기는 가을바람에 스며들어 세상을 채운다.
떠남과 충만이 동시에 발생하는 역설이다. 부재는 공허를 남기지만, 그 공허는 새로운 향기로 채워진다.
억새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장면은 쓸쓸함을 자아내지만, 동시에 생의 또 다른 시작을 예고한다. 소슬바람은 외로움과 자유를 동시에 내포한다. 이 모순적인 감각 속에서 시인은 임의 부재를 슬픔으로만 경험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부재를 통해 세계가 더 넓고 깊게 다가옴을 경험한다.
이러한 전환은 한국 서정시 전통과 깊은 연관을 가진다. 김소월의 이별 시는 부재를 슬픔 속에서 승화했고, 윤동주의 시는 상실 속에서 새로운 꿈과 별을 발견하였다.
이 시 또한 같은 계보 속에 놓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다른 점이 있다. 시인은 ‘에어컨’, ‘코드’, ‘선풍기’라는 구체적 생활의 언어를 사용한 것이다.
이는 전통적 상징어와 달리, 현대인의 삶을 그대로 담아낸 것이다. 따라서 이 시는 전통 서정의 미학을 계승하면서도, 오늘의 생활세계와 결합하는 독특한 지점을 형성한다.
그것은 과거와 현재가 맞닿는 자리에서 태어난 새로운 서정의 가능성이다.
이 시를 존재론적으로 읽을 때, 임은 단순히 떠난 연인이 아니라 존재의 한 국면이다. 청춘일 수도 있고, 뜨거운 열정일 수도 있으며, 혹은 한 시절의 고통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떠났다는 사실, 그리고 떠남 속에서 새로운 충만이 태어난다는 사실이다.
이는 헤겔의 정반합 변증법을 연상시킨다. 부정은 파괴가 아니라, 새로운 긍정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여름의 고통은 사라졌지만, 그 사라짐은 가을의 충만을 낳았다.
임은 떠났지만, 그 떠남이 향기로 세상을 채웠다.
부재와 충만은 서로를 조건 짓는 두 얼굴의 진실이다.
또한 이 시는 시간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다. 청춘은 끝나가고, 성숙은 찾아온다. 그러나 그 과정은 단순히 잃어버림이 아니라 얻어냄이다. 청춘이 물들어가는 것은 사라짐이 아니라 성숙의 징표이다. 매미의 울음이 사라지는 것은 끝이 아니라, 열매와 향기의 시작이다.
시간은 잔인하지만, 동시에 자비롭다. 그것은 빼앗아가면서도 또 다른 것을 준다.
이 시는 그 시간의 양면성을 섬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시의 정조는 독자에게 위로로 다가온다. 우리는 모두 삶의 한 국면에서 ‘임’을 떠나보낸 경험이 있다. 그것이 사랑이든, 청춘이든, 꿈이든, 결국 떠남은 찾아온다. 그러나 시인은 말한다. 떠난 자리가 공허로만 남지 않는다고. 그 빈자리는 계절의 향기와 열매로 채워질 수 있다고.
그러므로 〈돌아선 임〉은 단순한 개인적 체험을 넘어, 누구나 겪는 삶의 진실을 드러낸 보편적 서정시라 할 수 있다.
생활 속에서 묻어 나오는 글들이 아름답고 편안하게 느끼는 것은 정덕현 시인만이 품고 있는 서정시의 충만함이다
온 세상을 가을로 가득하게 차오르게 하는 가을로 물들기 전에 가을의 풍경을 미리 볼 수 있도록
돌아선 임의 제목처럼
가을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상쾌한 서정시를 돌아선 임의 향기가 나도록 시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서정시의 장르를 면면히 느낄 수 있었다
행복한 가을의 서정시의 코드를 빼고 싶지 않도록 또 다른 임을 향한 시인의 행보가
기다려진다
< 결론 >
〈돌아선 임〉은 떠남과 충만, 상실과 성숙을 동시에 담아낸 시다. 여름의 고통은 지나가고, 가을의 향기는 찾아왔다.
임은 떠났지만, 그 향기는 세상을 채운다.
이 시는 한국 서정시의 전통을 현대적 생활세계와 접목하여, 부재와 충만의 변증법을 섬세하게 노래하였다.
결국 이 작품은 존재의 본질적 물음
“떠남은 무엇을 남기는가”에 대한 한 편의 응답의 서정시로
여름과 가을의 중간 길목에서 여유로운 서정시로 가을로 물들어 가기 전의 상태를 지향한 시로 손꼽힌다
시석문학 경인 지회장,
시흥예총예술인상,
시집 자연을 훔친 도둑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