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박성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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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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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효암) 조돈익
정갈한 바위경 돌 한 점에
석인은 아침마다 물을 칩니다
잘 잤는가
좋은 아침이네
돌이 답을 합니다
쏴아 졸졸졸
숲 속 기슭에서
즐겁게 노 니는 새소 리도 들립니다
빛고 운 아침 햇살에 세상이 깨어나듯
수 반에 올려진 바위 산수 절경에 생명이 살아 숨 쉽니다
자연에서 인연 되어 함께 하게 된 돌
처음 만났을 때
서로 눈 맞춤은 진한 사랑이었고
그날 너무도 행복했습니다
바위에 물을 치면 풋풋한 흙냄새 풍겨오고
돌은 계절마다 바뀌는 자연의 노래 들려줍니다
봄이면 잎새 달 새싹 움트는 노래를 하고
여름이 되면 계곡 물소리 새소리 들려주고
가을 되면 붉게 물든 단풍 숲 시를 읊습니다
겨울이 되면 산기슭 눈꽃 세상을 보여줍니다
언제나 다소곳 말이 없지만
물을 치면 늘 답을 하는 돌 벗
사유 思惟하는 마음이
돌 세상과 하나 되어 함께하는 삶
매일 아침 물을 치는 석인은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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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심층 해설>
서론》
‘물 치는 행위’의 상징성
조돈익 시인의 「물 치는 사람」은 전통적 시정신과 현대적 사유가 교차하는 작품이다.
이 시에서 중심 행위는 단순히 바위에 물을 끼얹는 ‘물 치기’이다.
그러나 그것은 곧 단순한 생활 행위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교감을 여는 의례적 행위, 존재와 존재가 서로를 인식하는 소통의 의식으로 승화된다. 물을 치는 순간, 무언(無言)의 바위가 생명력을 얻고, 돌과 시인은 상호 관계 속에서 존재를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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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공간 바위와 물의 대화>
시의 첫 장면에서 석인은 “정갈한 바위경 돌 한 점”을 향해 물을 친다.
‘정갈’이라는 형용은 단순한 깨끗함을 넘어, 수행적 맑음과 마음의 비움을 의미한다. 그 위에 물을 얹는 순간 돌은 대답 한다.
“잘 잤는가 / 좋은 아침이네”라는 구절은 의인화된 대화이지만, 이는 단순한 상상적 환상이 아니라 자연의 응답을 체감하는 시인의 청각적 내면 경험이다. 자연은 무언이지만, 석인은 자연을 통해 말을 듣는다.
이 구조는 한국적 자연관, 곧 ‘만물유정(萬物有情)’의 사유를 충실히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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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적 이미지 솨아, 졸졸졸>
둘째 연에서 묘사되는 소리의 풍경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솨아’, ‘졸졸졸’은 의성어적 장치를 통해 물의 리듬을 구체화한다.
이 소리는 단지 물소리만이 아니라 숲 속의 새소리와 어우러져 다층적 교향을 이루며, 아침 햇살과 함께 생명의 각성을 상징한다.
이 장면에서 시인은 자연을 단일 요소가 아니라 복합적 교향으로 제시한다. 여기서 물소리는 인간의 언어 이전의 원초적 언어이며, 새소리와 바람소리와 더불어 ‘자연의 합창’을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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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 순간 돌과의 첫 인연>
시인은 돌을 ‘자연에서 인연 되어 함께 하게 된 벗’으로 부른다.
이 구절에서 돌은 단순한 사물성을 넘어선다. 불교적 인연관(因緣觀)이 투영된 부분이다. ‘처음 만났을 때 / 서로 눈 맞춤은 진한 사랑이었고’라는 표현은, 무정물과의 첫 대면이 곧 사랑의 체험임을 드러낸다. 시적 화자는 돌과 인간을 동일한 존재론적 차원에 위치시키며, 만남을 통해 기쁨을 발견한다. 이는 단순한 미적 묘사가 아니라 ‘존재의 상호 환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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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의 노래 시간의 윤리>
시의 중반부는 사계절의 순환으로 구성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은 각각의 소리를 돌이 들려주는 음악으로 변환된다. 돌은 계절마다 다른 언어로 노래한다.
봄: 새싹 움트는 희망의 노래
여름: 계곡 물소리, 새소리
가을: 붉은 단풍 숲의 시
겨울: 눈꽃 세상
여기서 돌은 단순히 계절의 변화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시인에게 그 자체가 ‘시간의 교사’로서 역할한다.
자연의 주기적 리듬은 인간 삶의 윤리를 가르친다. 이는 유교적 조화관, 도가적 무위(無爲), 불교적 무상(無常)이 중첩된 사유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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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는 벗
돌과 사유>
“언제나 다소곳 말이 없지만 / 물을 치면 늘 답을 하는 돌 벗”이라는 부분은 작품의 핵심이다. 돌은 침묵의 상징이다.
그러나 물이 닿는 순간 그것은 응답한다. 여기서 ‘돌’은 사유의 매개체다.
물을 치는 행위는 곧 사유의 개시이며, 응답하는 돌은 자기 성찰의 반향이다. 이 구조는 하이데거적 존재 사유와 연결된다. 하이데거는 돌과 같은 무정물도 ‘현존재’의 세계 안에 있으며, 인간의 해석을 통해 의미를 드러낸다고 보았다.
조동익 시인은 한국적 맥락에서 이 철학을 시적으로 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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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상징
정화와 소통>
물은 정화와 소통의 상징이다.
전통적으로 물은 생명의 근원이며, 세상의 때를 씻어내는 정화의 힘을 가진다. 석인이 돌에 물을 친다는 것은 곧 자신을 정화하는 행위이자 돌과 대화하는 소통의 통로이다.
물은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를 가시화하며, 인간과 자연을 하나로 이어주는 매개이다. 물이 없었다면 돌은 응답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 물은 ‘존재의 언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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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의 의미
지속성과 변함없음>
돌은 불변성과 지속성을 상징한다. 계절이 바뀌고 세상이 변해도 돌은 자리에 남는다.
그러나 시인은 그 불변성 속에서 다양한 응답을 듣는다. 이것은 역설적 구조다. 변하지 않는 존재가, 오히려 변화의 모든 소리를 담아내는 것이다. 돌은 침묵 속의 풍요, 고독 속의 충만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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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적 삶
매일 아침의 반복>
마지막 구절에서 시인은 “매일 아침 물을 치는 석인은 행복합니다”라고 선언한다. 여기서 ‘행복’은 단순한 기분이 아니라 수행적 삶의 결실이다.
매일 반복되는 행위는 불교의 선 수행과 닮아 있다.
아침마다 행하는 물 치기는 곧 기도의 리듬, 명상의 호흡이다. 반복 속에서 자연과 일체가 되고, 존재의 궁극적 평화를 획득한다.
따라서 이 시의 행복은 일상의 의례화된 사유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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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미학과의 연결>
이 시는 동양적 자연관, 특히 한국적 미학을 충실히 계승한다. ‘무정물과의 교감’이라는 주제는 조선 후기의 산수화 정신, ‘사군자’ 전통과 맞닿아 있다.
돌은 화폭 속에서 변하지 않는 주체였고, 물은 끊임없이 흐르는 변화였다.
시인은 그 미학을 언어로 옮겨와 현대적 감각으로 재현한다.
특히 돌을 벗으로 삼아 사유하는 태도는 도가의 무위자연, 불교의 연기론, 유교의 조화론이 결합된 전통적 조형의식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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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 의미
생태적 상상력>
동시에 이 시는 현대 생태시로도 읽힌다. 자연은 단순히 배경이 아니라, 인간과 상호 소통하는 존재이다. 돌에 물을 치는 행위는 인간의 자연 보살핌, 돌의 응답은 자연의 생명성을 드러낸다. 이는 생태학적 감수성과 깊이 연결된다. 오늘날 환경 위기의 시대에 이 시는 인간과 자연의 새로운 관계를 제시한다.
돌과 물의 교감은 곧 인간과 지구의 교감이며, ‘돌 벗’은 지속 가능한 삶을 향한 은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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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사유의 의례’
로서의 시
결론적으로 「물 치는 사람」은 자연과 인간, 존재와 사유, 전통과 현대를 잇는 시이다. 물을 치는 행위는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사유의 의례’이다. 돌은 응답하는 존재로, 물은 소통의 매개로, 석인은 수행자로 그려진다.
이 삼자적 관계 속에서 시인은 삶의 행복을 발견한다. 작품은 한국적 자연관과 현대적 생태 의식을 결합하며, 궁극적으로는 ‘존재의 대화’라는 보편적 주제를 제시하였다.
수석을 사랑하며 물치는 사람은 물을 뿌릴 때마다 작품이 살아 숨 쉬는 신비한 경험을 하면서 돌과 대화하는 인연과 사유의 세계에서 행복한 한때를 시로 옮기어
물 치는 고요한 자아 성찰을 정갈한
바위경 돌 한 점에서 석인은 행복하다고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