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
시인의 사회를 위하여
■
박순 시인
해와 달과 나무를 품은 연은 날 수 없다고
우주를 수레바퀴를 울음을 징한 놈을
풀어헤친 징은 전시일 뿐이라고
우린 떠든다
호텔 캘리포니아를 노래했던
남자의 노래가 울려 퍼질 때
장구는 푸른 웃음을 머금고 허공에 떠 있다
능력 있는 사람만이 스펙으로 단단히 무장한 사람만이
멋진 사람이라고
우린 떠든다
선하게 둥글게 살아가는 것도
이 정도면 괜찮지 않냐고 누군가 말한다
수많은 웃음과 눈물 넘어
살아갈 만하지 않냐고, 소주잔을 기울이며
그 아득한 첫사랑을 껴안는다
기똥차게 맛깔나게 눈에 선하게
내 얘기야 무릎을 칠 수 있는 옛사랑을 추앙하며
그 사람의 찬가를 부르며 축배를 든다
가장 찬란했던 사랑을 노래하며,
문고리를 닫을 수 없는 노을
호텔 캘리포니아는 지금 어디에도 없다
---
《에세이》
시인의 사회를 위하여
<시가 던지는 첫 장면, 날지 못하는 연>
박순 시인의 시는 연으로 시작한다.
연은 본래 가볍고 바람에 몸을 맡겨 높이 떠야 한다.
그런데 해와 달과 나무를 품은 연은 너무 무겁다.
날 수 없다. 우리는 여기서 이미 사회의 과부하를 본다.
사회가 감당해야 할 짐이 너무 무거워서, 그 어떤 이상도, 꿈도 날아오르지 못하는 현실이다.
시인이 굳이 ‘연’을 택한 것은, 그것이 아이들의 놀이에서 시작하는 가장 순수한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순수한 상상조차 무거운 현실에 눌려 날지 못하는 풍경, 그것이 바로 우리의 출발이다.
< 징의 울음과 전시된 문화>
이어지는 징의 이미지는 깊다.
징은 본디 공동체를 불러 모으는 울림이다. 그러나 시 속의 징은 “전시일 뿐”이다.
박물관에 걸려 있는 전시품, 혹은 축제 무대 뒤편에 세워만 놓인 악기다.
그 울림은 살아 있는 공동체의 심장이 아니라, 구경거리로 소비되는 문화에 불과하다.
시인은 여기서 현대 사회가 전통을 어떻게 소비하는지를 묻는다.
살아 있어야 할 울림이 죽은 전시품으로 바뀌었을 때, 공동체의 심장은 어디에서 다시 뛰겠는가.
< 호텔 캘리포니아와 장구의 병치>
시의 한복판에서 등장하는 “호텔 캘리포니아”는 낯설지 않다. 많은 이들이 70~80년대 대학가에서 이 곡을 들으며 서구적 자유와 낭만을 꿈꿨다.
그러나 오늘의 ‘호텔 캘리포니아’는 더 이상 이상향이 아니다. “You can check out anytime you like, but you can never leave.”라는 가사처럼, 그곳은 달콤한 감옥, 빠져나올 수 없는 덫이다.
반면, 장구는 한국적 울림의 상징이다.
그런데 이 장구조차 “허공에 떠 있다.” 공허하다.
서구적 향락과 한국적 전통 모두, 현실을 붙잡아주지 못한다.
두 문화적 코드가 공존하지만, 그 공존은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떠다닌다.
이 병치는 곧 세계화 시대 한국 사회의 정체성 혼란을 보여준다.
< 스펙 사회의 초상>
“능력 있는 사람만이, 스펙으로 단단히 무장한 사람만이 멋진 사람”이라는 구절은 지금 우리의 자화상이다.
학벌, 토익 점수, 자격증, 경력, 인턴 기록, 그것들이 한 사람의 가치를 규정한다.
그러나 정작 그 속에서 인간적 따뜻함이나 내면의 깊이는 설 자리를 잃는다.
시인은 “우린 떠든다”라는 말로 이 현실을 풍자한다.
모두가 안다.
그것이 공허한 말잔치임을. 그러나 떠들지 않을 수 없는 사회, 그 아이러니가 이 구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술자리의 위안, 체념의 언어>
시가 점차 술자리로 내려온다.
“괜찮지 않냐”는 말은 체념의 대사다. 소주잔을 기울이며 사람들은 하루를 견딘다.
비판은 술기운에 풀리고, 분노는 웃음과 눈물 사이로 흘러간다.
한국 사회의 가장 익숙한 풍경 중 하나가 바로 이 술자리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무력감을 위안하고, 서로를 위로하며, 다시 내일을 버틴다.
시인은 이 일상의 언어를 시 속으로 끌어온다.
<첫사랑과 옛사랑 개인적 서정의 귀환>
갑자기 시의 톤은 바뀐다.
사회 비판에서 개인적 서정으로 넘어간다. “첫사랑” “옛사랑”이라는 말이 나온다.
왜 갑자기 사랑일까
그것은 사회적 억압 속에서 인간이 끝내 붙잡는 최후의 기억이기 때문이다. 첫사랑의 아련함은 체제도, 제도도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이다. 시인은 그 영역을 불러내어, 인간의 삶이 사회적 비판만으로는 다 담을 수 없음을 보여준다.
<축배의 순간 존재 긍정>
옛사랑을 추앙하며, 찬가를 부르며, 축배를 든다.
이 장면은 아이러니하다. 한편으로는 체념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삶에 대한 찬미다.
인간은 가장 힘든 순간에도 추억을 꺼내어 노래하고, 그 노래 속에서 순간의 황홀을 맛본다.
시인은 바로 그 점을 놓치지 않는다.
사회의 무게 속에서도 인간은 사랑을 기억하고, 그 기억으로 하루를 견뎌낸다.
<닫히지 않는 문, 사라진 호텔>
마지막은 섬뜩하다
"문고리를 닫을 수 없는 노을" 하루가 저물어도 문은 닫히지 않는다
끝나지 않는 미완의 현실 계속되는 불안의 은유다. "그리고 호텔 캘리포니아는 지금 어디에도 없다"
과거 세대가 꿈꾸던 이상향은 실재하지 않는다. 70년대 청춘이 꿈꾸던 자유, 80년대 학생들이 노래하던 저항, 90년대가 열망했던 풍요… 그 모든 호텔은 이미 폐허가 되었다.
남은 것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시가 우리에게 묻는 것>
이 시는 단순한 풍경 묘사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의 초상화다.
날지 못하는 연, 전시된 징, 허공에 떠 있는 장구, 스펙 사회, 술자리 체념, 옛사랑의 회상, 닫히지 않는 문, 사라진 호텔. 모든 장면이 우리 시대의 단면을 보여준다.
시인은 사회를 외면하지 않고, 삶의 공허와 체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동시에 사랑과 추억이라는 작은 불씨를 놓치지 않는다.
<‘시인의 사회’를 위하여>
그렇다면 시인이 말하는 ‘시인의 사회’란 무엇일까. 그것은 완전한 이상향이 아니다.
오히려 부서지고, 공허하고, 불완전한 현실 속에서, 여전히 시가 존재해야 한다는 선언이다.
시는 사회를 꾸짖고, 동시에 인간을 위로한다.
그것이 바로 ‘시인의 사회’다.
<문학과 사회의 교차로>
문학은 종종 개인의 서정에 갇히곤 한다. 그러나 이 시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정면으로 건드린다. 그러면서도 사랑과 추억이라는 인간적 서정을 놓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현대시가 걸어야 할 길이다. 사회를 외면하지 않으면서, 인간의 내면을 버리지 않는 것.
<오늘의 우리를 비추는 거울>
우리가 이 시를 읽으며 느끼는 것은 단순한 공감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반성이다.
우리도
“우린 떠든다”라는 구절처럼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능력주의를 욕하면서도, 또 다른 능력주의에 편승하고, 체제를 비판하면서도 결국 술잔 속에서 체념하지 않는가.
이 시는 우리에게 거울을 들이댄다.
<노을 속에서의 선택>
마지막 “문고리를 닫을 수 없는 노을”은 우리에게 선택을 묻는다.
닫히지 않는 문 앞에서, 우리는 다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체념 속에 머무를 것인가. 호텔 캘리포니아가 사라진 자리에서, 우리는 어떤 사회를 새롭게 상상할 것인가.
<시와 사회의 끊임없는 대화>
문학은 현실을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박순 시인의 이 작품은 우리 시대가 잃어버린 이상향을 슬퍼하면서도, 여전히 시가 해야 할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시인은 답을 내리지 않는다.
그러나 질문을 던짐으로써, 우리는 답을 찾아야 한다는 과제를 안게 된다.
<마무리>
시가 살아야 사회도 산다
결국 이 시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간명하다. 사회가 아무리 무겁고, 제도가 억압적이고, 이상향이 사라졌더라도, 시가 존재하는 한, 우리는 아직 말할 수 있다. 아직 떠들 수 있다.
그리고 그 떠듦 속에서 공동체는 다시 깨어날 수 있다.
“시인의 사회”란 거창한 유토피아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의 술자리에서, 옛사랑의 기억 속에서, 허공에 울리는 장구 소리 속에서, 여전히 삶을 이야기하고 노래하는 바로 그 현장이다.
박순 시인 프로필
2015년 계간 《시인정신》 신인문학상
2021년 시인정신 우수작품상
2023년 서울시립뇌성마비복지관 표창
2024년 제2회 서울시민문학상 본상 수상
2024년 제5회 하유상문학상 수상
문학청춘 기획위원,
한맥문학 편집위원
서울시립뇌성마비복지관 작문교실 강사
시집 "페이드 인"
시집 "바람의 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