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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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평론, 문화평론가
박성진 *이사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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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작곡가의 신곡
사랑의 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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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주문:음악 평론
“그대 손을 꼭 잡고 싶어요
사랑은 주문처럼
내 아픈 하루를 건너게 해요”
“버틸 수 있게 힘을 주세요
포기하지 않게
꿈을 놓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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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몇 줄만으로도
이 노래가 단순한 멜로디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딸깍한 주문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사랑을 위해, 노래를 위해,
진짜 삶을 위해
스스로에게 희망을 주문하는
애틋한 사랑의 주문을 걸어주는
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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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주문〉 음악 평론
〈사랑의 주문〉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재탕한 흔한 노랫말이 아니다.
시작부터 감정선을 낮추어 들어가
“손을 잡아 달라”는 절실함을 들려준다.
그 절실함은 감미로운 선율보다는
힘겹게 숨을 들이마시는 가수의 현실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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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는 상처를 숨기는 대신
상처를 꺼내놓는다.
그리고 꺼낸 상처를
‘사랑’이라는 온기로 덮는다.
그래서 이 노래는
발라드가 아니라 ‘살아내는 음악’이다.
노래를 듣는 사람은
애절해서 우는 게 아니라
그 뚜벅뚜벅 버티는 용기가
자기 가슴을 흔들어서
조용히 눈물 흘리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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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작곡가
이동훈 작곡가는
한국가요협회 회장이라는 직책보다
60년간 가요계를 떠받쳐 온
현장의 기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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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히트곡을 만든 작곡가가
발표하지 않고 간직해 둔 곡이
천여 곡이 넘는다는 사실은
대중음악사적 자산이다.
그중에서
〈사랑의 주문〉을 이사벨라에게 준 것은
단순한 ‘작품 제공’이 아니다.
암투병으로 몸이 무너져도
노래를 포기하지 않는 가수에게
“노래는 아직 당신 손에 있다”
라고 건네준 작곡가의 손길이다.
작곡가가 흘린 눈물은
작품 외적인 서사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이 서로 기대는
아름다운 예술적 동행이다.
거장들은 명성을 위해 음악을 만들지 않는다.
사람 한 명을 살리기 위해 음악을 만든다.
이동훈은 그 길을 걸어온 흔치 않은 거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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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인공 이사벨라
이사벨라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위한 가수가 아니다.
그녀는 인간의 한계까지 내려가 본 사람이다.
12번의 항암치료.
몸을 찢는 옆구리 통증.
수술과 부작용의 반복.
그럼에도 음정 하나를 놓치지 않으려
노래를 놓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런 사람을 오뚝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그런 단어로 다 설명할 수 없다고 본다.
오뚝이는 쓰러지면 다시 일어난다.
이사벨라는 쓰러질 틈조차 주지 않으려 했다.
그것이 더 큰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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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 설 때마다
숨이 차고 얼굴이 창백해져도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노래는 그녀의 꿈이 아니라
‘숨’이었다.
숨을 쉬기 위해 노래했고,
노래를 하기 위해 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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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에서
‘투혼’이라는 말이 가끔 남발되지만
이사벨라에게는 그것이 수사가 아니다.
순간의 감동이 아니다.
삶의 기록이다.
그녀가 국민가수를 꿈꾸는 것은
우승을 위한 욕망이 아니라
“살아냈다”는 증언을 대중 앞에 남기기 위함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의 무대를 보며
연민이 아니라 존경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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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주문〉은
결국 이사벨라 자신에게도 주문이다.
“포기하지 마라.”
“노래는 아직 너에게 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이 노래를 듣는 이유는
그 주문이 그녀에게 통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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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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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는
작곡가와 가수가 함께 만들어낸
‘한 사람의 생존 기록’이다.
아픈 가슴이 노래를 만들었다면
거장의 손길은 그 노래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이사벨라의 목소리는
그 힘 위에 다시 사랑을 얹었다.
〈사랑의 주문〉은 노래가 아니라
오늘을 견디는 사람들의 작은 기도다.
그리고 그 기도를 가장 절실하게 부르는 사람,
오늘의 주인공은 단연 이사벨라다.
그녀의 다음 무대와 다음 노래가 기다려진다.
그 기다림이 곧 응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