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제2부-이어령 선생님의 지성과 영성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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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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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에서 영성으로

— 한 지성이 멈추어 선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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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 문화평론가


어떤 이는 많은 말을 남긴다.

어떤 이는 분명한 개념을 남긴다.

그리고 아주 드물게,

말이 멈춘 자리를 남기는 이가 있다.

이어령 선생님은

그 드문 쪽에 가까웠다.

선생님은

지성이 가장 빠르게 움직이던 시대를

몸으로 건너온 분이다.

말이 앞섰고,

설명이 신뢰를 얻었으며,

개념이 방향을 대신하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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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심에서

선생님의 언어는 늘 먼저 불려 나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선생님의 말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더 분명해지기보다는

더 조심스러워졌고,

더 많이 말하기보다는

어디에서 멈출지를 고민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정확함이

언제나 따뜻함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논리가

항상 책임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감각이

그 침묵 속에 스며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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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줄어들자

어떤 이들은 그것을

물러섬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 변화는

뒤로 간 것이 아니라

속도를 바꾼 것이었다.

선생님은

설명되지 않는 앞에서

굳이 설명을 밀어 넣지 않았다.

말이 닿지 않는 자리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지 않았다.

그때부터

선생님의 언어는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어디에서 멈추느냐로 기억되었다.

말을 내려놓은 것이 아니라,

말을 감당하는 방식이 달라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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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닿은 영성은

어떤 결론도 아니었다.

완성된 답도 아니었다.

그것은 방향에 가까웠다.

더 많이 이해하려는 쪽이 아니라,

조금 더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것이다.

높아지는 쪽이 아니라,

스스로를 낮추는 쪽이다.

선생님에게 영성은

선언이 아니라

삶의 태도였다.

모든 것을 규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이며

이해되지 않는 것을

함부로 밀어붙이지 않으려는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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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절제 속에서

지성은 비로소

자기 한계를 바라보게 된다.

선생님의 사유가

분명히 달라진 자리에는

고통이 있었다.

상실과 병,

그리고 유한함이

생각이 아닌 현실로 다가왔을 때,

지성은 더 이상 앞서 나갈 수 없게 된다.

그 순간 남는 것은

설명이 아니라 자세다.

선생님은

개념을 앞세우지 않았고,

언어로 그 자리를 덮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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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선택이

지성이 영성으로 옮겨간 일이 아니라,

지성이 제자리를 찾은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의 여정은

모범이 되기보다는

질문으로 남아 있다.

지금 우리가 쓰는 지성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돕고 있는가,

아니면 너무 빨리 정리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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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담론은

서두르며 결론을 만든다.

그러나 삶은

그렇게 빨리 정리되지 않는다.

선생님은

그 사실을

마지막에서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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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생님처럼 말하지 않겠다.

그렇게 말할 수도 없다.

다만,

그분이 멈추어 선 자리에서

곧바로 다음 말을 꺼내지 않으려 한다.

그 침묵을 건너뛰지 않는 일,

그 망설임을 존중하는 일,

그것이 지금

이 시간을 통과하며

글을 쓰는 이로서

내가 선택한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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