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김도연 화가-아주 작은 예수》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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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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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예수/김도연 화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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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헌정 시


아주 큰 빛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는 오래전

마음 한쪽에

가만히 내려놓았다


높은 이름 대신

낮은 그늘로 들어가

말은 줄이고

붓을 들었다


사랑은 말없이 번졌고

감사는

소리 없이 남았으며

기도는

몸이 먼저 배웠다


눈을 피하려 할수록

그림은 밝아졌고

고개를 숙일수록

성화들은

사람의 숲 속으로 들어간다


그는

그린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아보려 했을 뿐


그래서

그 앞에 서면

사람들은

생각보다 먼저

마음이 내려앉는다


아주 작은 예수는

붓 끝에서 내려와

한 사람의 하루에

조용히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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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아짐으로 그려진 빛--- 김도연 성화의 서정과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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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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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는 언제부터 ‘삶’이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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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연 화가의 성화를 바라보면, 우리는 먼저 질문을 받는다.

이것이 그림인가, 아니면 삶의 흔적인가. 그의 화면에는 설명하려는 의지가 거의 없다. 대신 살아온 태도가 고요하게 배어 있다. 성화가 교리를 설득하지 않고, 삶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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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예수’라는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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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제목이자 김도연 성화 세계의 핵심은 작아지려는 의지다. 위대한 구원자, 찬란한 후광의 예수가 아니라, 하루의 가장 낮은 자리에 머무는 예수. 이는 신학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의 선택이며, 예술가로서의 결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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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대신 붓을 드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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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연 화가의 성화에는 말이 없다. 설명도, 주장도 없다. 그 대신 붓이 있다. 말이 줄어든 자리에서 붓은 기도가 되고, 선은 고백이 된다. 이때 성화는 ‘보여주는 그림’이 아니라 침묵을 견디는 화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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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아지는 것은 빛이 아니라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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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그림이 밝아지는 이유는 색채 때문이 아니다. 고개를 숙일수록 화면이 환해지는 역설은, 빛이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새어 나오는 것임을 증명한다. 김도연의 성화는 조명을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마음의 맑음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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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숲 속으로 들어간 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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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은 “성화들은 사람의 숲 속으로 들어간다”는 대목이다. 김도연의 성화는 성당 벽에 머물지 않는다. 누군가의 하루, 누군가의 식탁, 누군가의 아픈 마음 곁으로 조용히 스며든다. 성화의 귀환이 아니라 성화의 동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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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것이 아니라 살아보려 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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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은 김도연 화가의 예술의 윤리 선언과 같다. 그는 화가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먼저 살았고, 그 삶이 그림이 되었다. 그래서 그의 성화에는 기교보다 체온이 있고, 완성도보다 진실이 먼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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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먼저 내려앉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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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연 화가의 성화 앞에서 사람들은 설명보다 먼저 고요해진다. 감동보다 앞서는 것은 안정이고, 감탄보다 먼저 오는 것은 쉼이다. 이는 예술이 줄 수 있는 가장 깊은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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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의 현대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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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계는 큰 빛에 지쳐 있다. 더 강한 메시지, 더 빠른 설득, 더 큰 목소리. 김도연의 성화는 그 모든 것의 반대편에 서 있다. 그래서 오히려 현대적이다.

김도연 화가의 성화는 숲 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숲향의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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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예수가 머무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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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연 화가는 아주 작은 예수이다.

그 예수는 하늘로 올라가지 않는다.

붓 끝에서 내려와 한 사람의 하루에 머문다. 이 ‘머묾’이야말로 그의 성화가 아름다운 이유다.

크지 않기에 닿고, 겸손함으로 낮기에 오래 남는다.

성화는 결국 이렇게 말없이 증언한다.

구원은 크기에서 오지 않고, 삶의 태도에서 온다. 작은 빛으로 별 헤는 밤이 되어

모든 사람에게 감동과 구원의 성화

그림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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