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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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시조
펼치면
온 우주를
다 덮고도 남지요
오므리면
손바닥보다
작은 것이 되지요
마음과
마음 사이에서
웃고 울며 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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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조를 읽으면
무언가를 이해하기 전에
먼저 호흡이 느려진다.
말이 적어서가 아니라
말 사이의 여백이
사람을 서두르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김민정 시인의 시조는
읽는 이를 끌어당기지 않는다.
그저 옆에 앉아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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펼친다는 말의 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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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펼치면”이라는 첫 단어에는
힘이 들어 있지 않다.
열어 보이겠다는 의지도,
증명하겠다는 욕심도 없다.
조용히 손을 펴는 동작처럼
자연스럽다.
그래서 우주를 덮는다는 말도
과장처럼 들리지 않는다.
이 펼침은
가져오려는 마음이 아니라
내어줄 준비가 된 마음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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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멀리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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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에서 우주는
별과 행성의 공간이 아니다.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려 할 때
잠시 넓어지는 마음의 폭,
그 순간의 이름이다.
덮고도 남는다는 말속에는
다 담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아니라
아직 건너지 않은 관계의 여백이 남아 있다.
우주는 그렇게
삶 속에서 잠깐 열렸다가
다시 접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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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므림은 작아지는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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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곧바로
오므림으로 돌아온다.
펼친 마음을 다시 접는 일.
그러나 이 오므림에는
후퇴나 위축의 기색이 없다.
손바닥보다 작아진다는 말은
이제 그것을
손으로 느낄 수 있다는 뜻이다.
닿을 수 있고,
놓칠 수도 있고,
책임질 수도 있다는 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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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이라는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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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은
가장 일상적인 공간이다.
기도할 때도,
누군가의 등을 밀어줄 때도,
눈물을 닦을 때도
사람은 손바닥을 쓴다.
이 시조는
우주를 말하다가
끝내 손바닥으로 내려온다.
크게 말했던 것이 아니라
살아야 할 자리로
조용히 돌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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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마음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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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연에서
시는 중심을 말하지 않는다.
완성도, 결론도 없다.
대신 ‘사이’가 있다.
마음과 마음 사이.
이곳은 늘 불안정하고
늘 흔들리는 자리다.
그래서 웃음도 있고
울음도 있다.
김민정 시인의 시조는
그 흔들림을 없애려 하지 않는다.
그 자리에 함께 서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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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과 울음이 나란히 놓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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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고 울며 산다는 말은
삶을 낭만화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삶을 비극으로 몰아가지도 않는다.
감정이 오가는 것을
삶의 자연스러운 상태로 받아들인다.
이 시조의 따뜻함은
바로 이 지점에서 생긴다.
버티라는 말도,
참으라는 말도 없이
그저 살아진다고 말해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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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적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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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조가 오래 남는 이유는
말이 적어서가 아니다.
말을 아껴야 할 자리를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더 말할 수 있는 곳에서 멈추고,
설명할 수 있는 곳에서 물러난다.
그래서 독자는
시를 읽는 대신
자기 마음을 꺼내 보게 된다.
이 시는
해석보다
동행을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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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가 남기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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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삶을 크게 만들자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펼칠 수 있을 만큼은 펼치고,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은 오므리며
사이에서 살아가자고 말한다.
김민정 시인의 시조는
그렇게
조용히 하루에 내려앉아
읽은 사람의 마음을
넓혔다가 따뜻하게 접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