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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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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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대 시인
홍시를 본다
주름이 먼저 보인다
그 안에서
할아버지가
조용히 웃고 계신다
지게를 지고 오던
늦가을 오후
붉은 홍시가
해처럼 흔들리던 날
숟가락을 대면
단맛보다 먼저
그 얼굴이 녹아
입안에 번진다
아무 말 없던 사랑
사랑방에 남아 있던
웃음소리
이제
내가 그 나이가 되어
홍시를 먹을 때마다
말랑해진 세월 속에서
할아버지를 천천히 꺼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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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시라는 시간의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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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맛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홍시를 보면서 화자가 처음 인식하는 것은 단맛이 아니라 주름이다. 보통 홍시는 달고 부드러운 과일로 기억되지만, 이 시에서 홍시는 먼저 얼굴이 된다. 그것도 젊음의 얼굴이 아니라 세월이 고스란히 내려앉은 얼굴이다. 이 첫 장면에서 이미 시는 감각의 방향을 바꾼다. 미각이 아니라 시각, 더 정확히 말하면 시간의 시각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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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노쇠가 아니라 미소다. 할아버지는 말하지 않는다. 설명하지도 않는다. 다만 조용히 웃고 계신다. 이 ‘조용히’라는 부사는 이 시 전체를 지탱하는 윤리적 중심이다. 자신의 삶을 드러내지 않고, 고단함을 앞세우지 않으며, 사랑을 말로 증명하지 않는 태도. 그 침묵 속의 미소가 바로 주름의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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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게를 지고 오던 늦가을 오후라는 장면은 한국적 기억을 정확하게 불러낸다. 지게는 근대 이전 노동의 상징이고, 늦가을은 수확과 소진이 동시에 존재하는 계절이다. 시는 그 노동을 영웅화하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위대한 인물이 아니라 하루를 다 써내고 돌아오던 사람이다. 그날 홍시는 해처럼 흔들렸고, 아이의 눈에는 과일이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하루를 다 마친 시간의 흔들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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숟가락을 대는 순간, 이 시는 결정적인 전환을 맞는다. 입안에서 먼저 퍼지는 것은 단맛이 아니라 얼굴이다. 이는 기억이 감각을 지배하는 순간이다. 홍시는 음식이지만, 동시에 기억의 매개체다. 먹는 행위는 단순한 섭취가 아니라 과거를 현재로 불러오는 통로가 된다. 사랑은 말보다 먼저 녹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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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말 없던 사랑이라는 구절은 한국 부모·조부모 세대의 사랑을 가장 정확하게 포착한다. 설명하지 않고, 훈계하지 않으며, 표현하지 않지만 분명히 거기에 있었던 사랑. 그것은 사랑방에 남아 있던 웃음소리처럼 공간에 스며 있었고,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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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시간은 회상에서 멈추지 않는다. 화자는 어느새 그 나이가 되었고, 기억의 대상이 아니라 기억을 이어받는 존재가 된다. 여기서 시는 감상이 아니라 윤리로 이동한다. 과거를 그리워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 태도를 어떻게 현재의 삶으로 옮길 것인가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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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를 천천히 꺼내 먹는다’는 표현은 대담하지만 불경하지 않다. 여기서 먹는다는 것은 소비가 아니라 계승이다. 몸속으로 들여보내 자신의 일부로 만드는 일이다. 할아버지는 더 이상 사진 속 인물이 아니라 화자의 말투, 침묵, 삶의 결로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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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에는 원망도 없고, 과장된 미화도 없다. 대신 말랑해진 세월이 있다. 늙는다는 것은 단단해지는 것이 아니라 부드러워지는 일이라는 통찰. 이 시는 노년을 짐이 아니라 결로서의 시간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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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시〉는 크지 않은 시다. 그러나 깊다.
이 시는 말한다. 사랑은 설명되지 않아도 남고, 시간은 먹을 수 있으며, 주름은 숨겨야 할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가 받아야 할 얼굴이라고. 그래서 이 시는 할아버지에 대한 시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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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시는 달아서가 아니다.
시간을 품었기 때문에 귀하다.
이 시는 그 사실을 아주 조용히, 그러나 오래 남게 말하고 있다. 홍시의 시인으로
서정시라 더할 나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