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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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경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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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산을 넘으며
열한 개의 산을 넘고
사계절의 강을 건넜습니다
길을 잃고 넘어질 때
연둣빛 이파리들의 응원과
따뜻한 햇살이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산을 넘으며
계곡의 통곡도 듣고
긴 담벼락의 한숨도 들었습니다
강을 건널 때는
더러운 물에서
예쁘게 피어나는 연꽃도 보고
세상과 함께 울어주는
빗줄기도 만났습니다
12월의 산을 넘으며
나의 싯다르타는
염화미소를 만납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도
그냥 웃고 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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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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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한 해의 회고가 아니라, 삶이 스스로를 기록하는 방식에 가깝다. “열한 개의 산”과 “사계절의 강”은 시간의 나열이 아니라, 통과해야만 하는 문턱들의 총합이다. 화자는 결과를 말하지 않는다. 오로지 넘었다는 사실만을 말한다.
그 단정한 서술이 이 시의 윤리다.
삶은 설명보다 통과로 증명된다는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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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짐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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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고 넘어질 때” 도움은 의외의 곳에서 온다. 교훈도, 조언도 아니다. 연둣빛 이파리의 응원과 햇살의 손. 자연은 구원의 주체가 아니라 동행자로 등장한다. 여기서 시는 실패를 제거하지 않는다. 실패는 유지되되, 그 곁에 손이 놓인다. 넘어짐이 삭제되지 않기에 회복은 더 인간적이다.
■□소리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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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산과 담벼락은 말을 한다. 계곡은 통곡하고, 담벼락은 한숨을 쉰다. 공간이 감정을 획득하는 순간, 화자는 세계의 청취자가 된다. 이는 세계를 해석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듣는 존재로 서려는 결심이다. 듣는 윤리는 판단의 유혹을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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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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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건너며 화자는 더러움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본다. 오염된 물에서 연꽃이 피고, 비는 세상과 함께 운다. 선과 악, 청정과 혼탁의 이분법은 여기서 무력해진다. 삶은 정결해서가 아니라 함께 울 수 있어서 견딜 만해진다. 연꽃은 위로가 아니라 증거다. 더러움 속에서도 피어날 수 있다는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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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이라는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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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은 끝이지만, 이 시에서 12월은 정리의 계절이 아니다. 오히려 통과의 최종 문장이다. 한 해의 무게를 내려놓는 대신, 그 무게를 안고 넘어간다. 그래서 이 시의 시간은 결산이 아니라 성찰이다. 끝은 언제나 다음 문턱을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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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싯다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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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싯다르타”라는 소유격은 중요하다. 이는 교과서적 깨달음이 아니라, 개인의 방식으로 도달한 사유의 얼굴이다. 싯다르타의 여정이 강과 숲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렀다면, 이 시의 싯다르타는 12월의 산을 넘으며 미소에 도달한다. 깨달음은 결론이 아니라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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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화미소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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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화미소는 말 없는 이해다. 설명하지 않고, 설득하지도 않는다. 그저 미소로 세계를 받아들인다. 이 미소는 승리의 표정이 아니라 수용의 표정이다. 고통을 부정하지 않되, 고통에 지배당하지 않는 얼굴. 시는 그 얼굴을 도달점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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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움에 대한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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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삶의 공허를 찌르는 문장이다. 그러나 시는 그 문장을 논쟁하지 않는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대한 이 시의 답은 반박이 아니라 웃음이다. 웃음은 회피가 아니다. 무게를 인정한 뒤 선택한 태도다. 무거움과 가벼움의 대립을 미소로 접어두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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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고 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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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문장은 결론이 아니라 약속이다. “그냥 웃고 말지요”에는 체념이 없다. 오히려 삶을 끝까지 견디겠다는 조용한 서약이 있다. 이 시는 우리에게 더 단단해지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더 부드러워질 수 있다고 속삭인다. 그 부드러움이, 2025년 12월의 산을 넘게 하는 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