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신위식 시인-송구영신》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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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 신위식



저무는 한 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요란한 약속보다는

조용한 다짐


낡은 나를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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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턱으로서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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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에서 한 해는 ‘지나간 것’이 아니라 넘어야 할 문턱이다. 저무는 시간은 소멸이 아니라 방향 전환의 순간으로 제시된다. 끝이 곧 시작이라는 진술은 낡은 격언처럼 보이지만, 여기서는 장식 없이 단문으로 놓이면서 시간의 본질을 정확히 겨눈다. 시간은 닫히지 않는다. 방향만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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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을 거부하는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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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한 약속보다는 / 조용한 다짐”이라는 구절은 이 시의 윤리 선언이다. 말이 많아질수록 책임은 가벼워진다. 시는 그 반대편을 택한다. 다짐은 외부를 향하지 않는다. 다짐은 스스로를 겨냥한 말이다. 그래서 조용하다. 조용함은 결핍이 아니라 집중의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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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고 입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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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나를 벗어버리고 / 새사람을 입자”에서 변화는 추상적 결심이 아니라 몸의 동작으로 표현된다. 벗고 입는 행위는 일상적이지만, 그 일상성 덕분에 변화는 가능해진다. 이 시는 인간을 관념으로 바꾸지 않는다. 여전히 같은 몸을 가진 채, 다른 태도를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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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의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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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가 말하는 시작은 거창한 목표 설정이 아니다. 혁신도, 도약도 없다. 대신 태도의 갱신이 있다. 시작은 무엇을 더 얻는 일이 아니라, 무엇을 덜어내는 일에 가깝다. 요란함을 덜어내고, 낡음을 내려놓는 것. 시작은 늘 가벼워질 때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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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짐의 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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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어조는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다. 담담하다. 그 담담함이 오히려 신뢰를 만든다. 불필요한 감정을 배제한 언어는 독자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함께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시의 온도는 설득이 아니라 동의의 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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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미학


〈송구영신〉은 새해를 축하하지 않는다. 대신 새해를 건너갈 자세를 제안한다.

이 시가 남기는 것은 희망의 구호가 아니라, 하루를 다시 살아볼 수 있다는 조용한 용기다. 그렇게 이 시는 연말의 소음 속에서, 가장 낮은 목소리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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