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청민 박철언 시인 ~노을 끝에 서서》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노을 끝에 서서


청민 박철언


붉게 물든 노을 끝에 서서

굽이굽이 살아온 길 되돌아본다


꺾임 없던 용기

차가운 지성

뜨거운 열정으로

이겨낼 수 있었던

수많은 고난과 도전


이제 지치고 노곤해진 어깨를

스스로 토닥이며 위로해 주고 싶은

황혼의 나그네


길지 않게 남은 시간 서두르지 않고

세상과 조화롭게 동행하면서

소외된 주변에 사랑을 베풀리라

평온한 숨결로도 가슴 찡한 시 쓰면서

온기 채워 아름답게 마무리하리라


노을의 온도로

살겠다는 시인



이 시는 늙음에 대해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늦게 이해한 삶에 대해 말한다.

노을은 하루의 끝이 아니라, 빛이 가장 부드러워지는 시간이다. 사물을 또렷하게 가르던 낮의 빛이 물러나면, 비로소 세상은 하나의 색으로 섞인다. 시의 화자는 바로 그 자리에 서 있다. 앞만 보고 걷던 시간에서 한 걸음 비켜서서, 자신과 세계를 함께 바라보는 자리다.


“굽이굽이 살아온 길”이라는 말에는 후회가 없다. 직선이 아니었음을 인정하는 평온이 있다. 젊은 날의 사람은 흔히 삶을 성공과 실패로 나누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구분은 희미해진다. 돌아간 길도 결국 한 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되돌아봄은 판단이 아니라 이해가 된다.


시인은 자신의 삶을 세 가지 힘으로 기억한다. 용기와 지성과 열정. 밀어붙이던 마음, 멈춰 생각하던 마음, 다시 일어나게 하던 마음. 한 사람의 생은 언제나 이 셋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 왔다는 고백이다. 그래서 그는 “이겨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겨낼 수 있었다”라고 말한다. 혼자 살아온 인생이 아니라는 뜻이다. 시간과 사람과 상황이 함께 버텨 준 삶이다.


이 시에서 가장 조용한 장면은 “스스로 토닥이며 위로해 주고 싶은” 대목이다. 젊음은 타인의 인정으로 자신을 확인하지만, 늦은 나이의 인간은 자기 이해로 자신을 받아들인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아지는 순간, 삶은 비로소 편안해진다. 여기에는 체념이 아니라 화해가 있다.


또 하나 눈에 남는 말은 ‘나그네’다. 노년을 집이 아니라 길로 부른다. 끝이 아니라 여정의 마지막 구간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다. 그래서 이 시에는 죽음을 앞둔 두려움이 거의 없다. 대신 속도를 늦춘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함이 있다. 서두르지 않겠다는 말은 포기가 아니라 조화다. 세상의 속도에 맞추어 걸을 때 사람은 주변을 보게 된다.



마지막에 시인은 사랑과 시를 함께 말한다. 먼저 사랑을 베풀겠다고 하고, 그다음에 시를 쓰겠다고 한다. 순서가 중요하다. 시는 표현이 아니라 남은 온도이기 때문이다. 살아온 마음이 조용히 스며 나올 때 문장은 힘을 얻는다. 그래서 그는 큰 작품을 쓰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숨결로도 가슴 찡한 시를 쓰겠다고 말한다.


이 작품의 마무리는 죽음을 준비하는 다짐이 아니다. 삶을 따뜻하게 정리하려는 태도다. 얼마나 높이 살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부드럽게 남을 것인가를 묻는다. 노을이 아름다운 이유는 밝아서가 아니라 따뜻해서다.


결국 이 시는 노년의 기록이 아니라 한 인간이 뒤늦게 배운 삶의 방식이다.

끝에 가까워져서야 비로소 사람은 경쟁이 아니라 동행을, 성취가 아니라 온기를 선택한다.

노을은 사라지는 빛이 아니다.

인간이 가장 인간다워지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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