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문학박사 김민정 시조 ~우수》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김민정 시조 〈우수雨水〉


꽃눈은 허기를 익혀

내 앞에 피나 보다


코끝을 들이미는

바람의 솔기 사이


게으른 눈을 비비며

기지개 펴는 햇살




겨울 끝 무렵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허기가 있다.

밥을 덜 먹어서가 아니라, 몸 어딘가가 비어 있는 느낌이다.

아침 공기를 들이마실 때 이유 없이 안쪽이 깨어나는 날, 그때 우리는 달력을 보지 않아도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안다.



이 시는 바로 그 순간에서 시작된다.

봄을 말하면서 꽃도 빛도 꺼내지 않고 먼저 “허기”를 꺼낸다.

그래서 이 작품의 출발점은 풍경이 아니라 몸이다.

우수는 녹아내리는 장면이 아니라, 살아 있는 감각이 먼저 반응하는 시간이다.



시인은 꽃을 말하지 않는다. 꽃눈을 말한다.

꽃은 이미 세계에 드러난 상태지만, 꽃눈은 아직 내부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 그 내부를 “익힌다”라고 표현한다.

익힌다는 말에는 시간이 있다.

겨울이 단순히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발효되고 있었다는 뜻이다.

추위가 길었다는 사실이 곧 봄의 준비였다는 역설.

그래서 꽃눈은 예쁜 대상이 아니라

견딘 시간의 표정이 된다.


우리는 대개 봄을 시작으로 기억하지만,

이 시는 봄 이전의 시간을 보여준다.

피기 전의 충만함,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미 진행 중인 생명.


“내 앞에 피나 보다”


이 한마디에서 시는 단정하지 않다.

‘핀다’가 아니라 ‘피나 보다’다.

확신이 아니라 감지다.

계절은 멀리서 오는 사건이 아니라

문득 눈앞에서 알아차려지는 변화다.



어느 날 길을 걷다가 공기가 달라졌음을 깨닫는 순간,

그때의 거리감은 이미 와 있지만 아직 이름 붙일 수 없는 상태다.

그 모호함이 바로 우수의 시간이다.


“바람의 솔기 사이”


바람을 흐름이 아니라 봉합선으로 본다.

옷의 이음새처럼 계절에도 이어 붙은 경계가 있다는 시선이다.

계절은 한 번에 뒤집히지 않는다.

먼저 틈이 생기고, 그 틈으로 냄새가 들어온다.

눈보다 코가 먼저 알아차리는 변화.

그래서 이 시에서 봄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스며든다.

공기의 얇은 결에서 시작된다.

햇살 또한 단번에 밝아지지 않는다.


“게으른 눈을 비비며 기지개 펴는 햇살”


아침에 막 깨어난 사람처럼 더디게 몸을 푼다.

봄은 폭발이 아니라 각성의 과정이다.

겨울이 끝났다고 선언하는 계절이 아니라

조금씩 풀리는 시간의 움직임이다.



이 시 전체는 그 ‘조금’을 놓치지 않는다.

큰 변화가 아니라 미세한 이동으로 계절을 그린다.



꽃눈, 바람, 햇살은 모두 위로 향한다.

땅속의 기운이 공기로, 빛으로 올라온다.

봄은 위에서 내려오는 따뜻함이 아니라

아래에서 올라오는 생명의 압력이다.

그래서 우리는 따뜻해지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부터 풀리기 시작한다.




우수는 늘 애매하다.

겨울이라고 말하기엔 부드럽고, 봄이라 하기엔 이르다.

이 시는 바로 그 중간을 붙든다.

확정 대신 예감, 개화 대신 준비, 시작 대신 감지.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다.

우수는 계절이라기보다 시간의 결에 가깝다.


이 작품은 꽃이 피는 순간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 직전의 떨림을 보여준다.

봄은 보이는 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몸이 먼저 알아차릴 때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시의 우수는 풍경이 아니라 생명의 낮은 선언이다.

조용하지만 되돌릴 수 없는 변화,

피기 전에 이미 살아 있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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