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
〈가을 데생〉
■
김민정 시조
바람도 만취인가
갈밭 길이 술렁인다
높을 대로 높은 하늘
저도 잠시 취하는지
흰구름 몇 송이 뜯어
제 멋대로 널어놨다
■
흔들림이 선이 되는 순간
■
이 시는 가을을 정의하지 않는다.
색을 나열하지도, 감상을 덧붙이지도 않는다.
대신 첫 줄에서 이미 계절의 결을 기울인다.
■
“바람도 만취인가.”
■
질문의 형식이지만, 사실은 방향 제시다.
가을은 또렷함의 계절이 아니라,
어딘가 조금 풀린 상태라는 것,
■
취한다는 건 완전한 붕괴가 아니다.
세계가 한치쯤 기울어 보이는 순간.
바람이 먼저 기울고,
그 기울어짐이 갈밭길로 번진다.
■
“술렁인다.”
■
격렬하지 않다.
그러나 안에서부터 움직인다.
갈대는 장식이 아니다.
바람의 감정을 대신 몸으로 흔들어 주는 존재다.
자연은 서로의 리듬을 숨기지 않는다.
■
여기까지는 땅의 높이다.
몸의 세계다.
그런데 시선이 위로 오른다.
■
“높을 대로 높은 하늘.”
■
반복은 공간을 밀어 올린다.
끝까지 올라간 높이.
그러나 그 하늘도 “저도 잠시 취하는지.”
■
‘저도’라는 말이 결정적이다.
바람도, 갈대도, 하늘도.
위와 아래가 나뉘지 않는다.
같은 숨결 안에 있다.
■
완벽하게 맑은 가을 하늘을 오래 올려다보면
문득 어지러운 느낌이 온다.
시인은 그 미세한 현기증을 붙잡는다.
계절의 본질은 선명함이 아니라
선명함이 너무 높아 생기는 어지러움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흰구름 몇 송이 뜯어
제 멋대로 널어놨다.”
■
구름을 ‘송이’로 센다.
꽃처럼 다룬다.
‘뜯는다’는 동사는
멀리 있던 하늘을 손 닿는 자리로 끌어내린다.
■
‘제 멋대로’라는 표현은 더 중요하다.
정돈된 배치가 아니다.
완벽한 구도가 아니다.
즉흥의 선, 살아 있는 손놀림.
■
그래서 제목이 ‘데생’이다.
■
완성된 채색화가 아니라
지금 막 숨 쉬는 선.
색이 채워지기 전,
감정이 가장 먼저 드러나는 자리.
이 시의 힘은
흔들림을 두려워하지 않는 데 있다.
■
취해 있지만 무너지지 않는다.
흩어져 있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계절은 완벽히 정돈될 때보다
조금 풀려 있을 때 더 살아 있다.
■
선 몇 개.
동사 몇 개.
그리고 약간의 장난기.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가을은 여기서
완성된 풍경이 아니라
흔들리되 무너지지 않는 선으로 서 있다.
잠시 취한 얼굴 같지만
그러나 또렷한 가을의 만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