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문학박사 김민정~가을 데생》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가을 데생〉


김민정 시조


바람도 만취인가

갈밭 길이 술렁인다


높을 대로 높은 하늘

저도 잠시 취하는지


흰구름 몇 송이 뜯어

제 멋대로 널어놨다




흔들림이 선이 되는 순간



이 시는 가을을 정의하지 않는다.

색을 나열하지도, 감상을 덧붙이지도 않는다.

대신 첫 줄에서 이미 계절의 결을 기울인다.


“바람도 만취인가.”


질문의 형식이지만, 사실은 방향 제시다.

가을은 또렷함의 계절이 아니라,

어딘가 조금 풀린 상태라는 것,


취한다는 건 완전한 붕괴가 아니다.

세계가 한치쯤 기울어 보이는 순간.

바람이 먼저 기울고,

그 기울어짐이 갈밭길로 번진다.


“술렁인다.”


격렬하지 않다.

그러나 안에서부터 움직인다.

갈대는 장식이 아니다.

바람의 감정을 대신 몸으로 흔들어 주는 존재다.

자연은 서로의 리듬을 숨기지 않는다.


여기까지는 땅의 높이다.

몸의 세계다.

그런데 시선이 위로 오른다.


“높을 대로 높은 하늘.”


반복은 공간을 밀어 올린다.

끝까지 올라간 높이.

그러나 그 하늘도 “저도 잠시 취하는지.”


‘저도’라는 말이 결정적이다.

바람도, 갈대도, 하늘도.

위와 아래가 나뉘지 않는다.

같은 숨결 안에 있다.


완벽하게 맑은 가을 하늘을 오래 올려다보면

문득 어지러운 느낌이 온다.

시인은 그 미세한 현기증을 붙잡는다.

계절의 본질은 선명함이 아니라

선명함이 너무 높아 생기는 어지러움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흰구름 몇 송이 뜯어

제 멋대로 널어놨다.”


구름을 ‘송이’로 센다.

꽃처럼 다룬다.

‘뜯는다’는 동사는

멀리 있던 하늘을 손 닿는 자리로 끌어내린다.


‘제 멋대로’라는 표현은 더 중요하다.

정돈된 배치가 아니다.

완벽한 구도가 아니다.

즉흥의 선, 살아 있는 손놀림.


그래서 제목이 ‘데생’이다.


완성된 채색화가 아니라

지금 막 숨 쉬는 선.

색이 채워지기 전,

감정이 가장 먼저 드러나는 자리.

이 시의 힘은

흔들림을 두려워하지 않는 데 있다.


취해 있지만 무너지지 않는다.

흩어져 있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계절은 완벽히 정돈될 때보다

조금 풀려 있을 때 더 살아 있다.


선 몇 개.

동사 몇 개.

그리고 약간의 장난기.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가을은 여기서

완성된 풍경이 아니라

흔들리되 무너지지 않는 선으로 서 있다.

잠시 취한 얼굴 같지만

그러나 또렷한 가을의 만추이다

작가의 이전글박성진 《문학박사 엄창섭 ~둘 혹은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