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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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혹은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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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창섭 시인
회산의 낮은 산자락 휘도는
자유로워 감미로운 바람처럼
내밀한 언약 통신하던
맑고 빛난 감동의 마침표는
새로운 항해 언약한 입맞춤에
대륙의 심장은 충격이다
아득한 삶의 눈부신 뱃길은
아흐, 황홀해 현기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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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둘 혹은 하나’라는 제목에서 이미 긴장을 품고 시작한다.
둘은 분리이고, 하나는 결합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둘과 하나를 대립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둘이기에 하나가 되고, 하나이기에 다시 둘로 흔들리는 관계의 진동을 노래한다. 제목은 선택지가 아니라 상태다. 존재의 미묘한 경계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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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행의 “회산의 낮은 산자락 휘도는”은 공간을 단번에 열어젖힌다.
높은 봉우리가 아니라 ‘낮은 산자락’이다. 위엄보다 숨결에 가깝다.
휘도는 산자락은 정적인 배경이 아니라 움직임을 품은 몸이다.
그 곡선은 둘을 감싸 안는 자리이며, 아직 완전히 하나가 되지 못한 거리의 형상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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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워 감미로운 바람처럼”이라는 구절은 이 만남이 억압이 아니라 자발적 호흡임을 말해준다.
바람은 소유되지 않는다. 다만 스친다. 그 스침 속에서 ‘내밀한 언약 통신’이 이루어진다. 여기서 통신은 말이 아니라 감각이다.
눈빛과 체온, 미세한 떨림이 서로를 알아보는 순간이다.
시는 언어 이전의 교감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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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빛난 감동의 마침표”는 흥미로운 표현이다.
감동은 보통 시작처럼 여겨지지만, 이 시에서는 마침표다.
이미 긴 기다림과 침묵의 문장이 있었고, 그 끝에 비로소 맺힌 점 하나. 그 점은 끝이 아니라 완결의 순간이다. 둘이 서로를 인정하는 합의의 표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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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부로 넘어가며 시는 돌연 넓어진다. “새로운 항해 언약한 입맞춤에 / 대륙의 심장은 충격이다.” 개인적 만남이 갑자기 대륙의 규모로 확장된다. 입맞춤은 단순한 애정 표현이 아니다.
세계를 흔드는 사건이다. 둘의 결합은 사적인 일이 아니라 우주적 파문을 일으키는 행위로 승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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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심장’이라는 표현은 중심의 울림을 뜻한다. 심장은 생명의 박동이다.
둘의 만남은 그 박동을 가속시킨다. 충격이라는 단어에는 전율과 두려움이 함께 담겨 있다. 하나가 되는 일은 황홀하지만, 동시에 기존의 질서를 깨뜨리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사랑은 부드러움 속에 격렬함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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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삶의 눈부신 뱃길”은 인생을 항해로 본다.
뱃길은 고정된 길이 아니다.
물 위에 그어졌다 사라진다.
둘이 하나가 되어 나아가는 길 또한 그렇다.
확신과 불안이 동시에 밀려온다.
그래서 마지막 행은 탄성으로 터진다. “아흐, 황홀해 현기증이다.” 황홀은 상승이고, 현기증은 흔들림이다. 기쁨과 두려움이 한 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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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결국 사랑을 통해 존재의 구조를 묻는다.
우리는 둘로 태어나지만, 하나를 꿈꾼다. 그러나 완전한 하나는 다시 또 다른 둘을 낳는다.
관계는 고정이 아니라 흐름이다. 산자락이 휘돌고, 바람이 스치고, 배가 나아가듯이. 시는 그 유동을 섬세하게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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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혹은 하나’는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지금 둘인가, 아니면 이미 하나인가. 혹은 둘이기에 더 깊은 하나를 향해 가는 중인가. 엄창섭 박사의 이 시는 격정적인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그 중심에 고요한 숨을 두고 있다. 황홀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태도. 그 균형이 이 작품을 단순한 사랑의 노래가 아닌, 둘 혹은 하나의 선택으로
존재론적 서정으로 끌어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