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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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문화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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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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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색안경을
벗어 놓고
세상을 볼 일이다
스쳐가는
바람의 말도
새겨들을 일이다
생각을
되새김하여
가다듬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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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는 일, 듣는 일, 가다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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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정의’가 아니라 ‘태도’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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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시인이 무엇을 써야 하는지를 말하지 않는다.
대신 어떻게 서 있어야 하는지를 먼저 제시한다.
“색안경을 벗어 놓고”라는 첫 연은 시의 윤리를 선언하는 문장이 아니라, 삶의 자세를 정돈하는 몸짓에 가깝다.
이 작품은 시론이 아니라 생활론이며, 시인의 직업적 규범이 아니라 존재의 태도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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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안경’이라는 일상어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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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안경’은 이념이나 편견 같은 거대한 말로 치환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익숙한 일상어로 제시된다.
그래서 이 시는 비판을 외치지 않고, 자기 점검을 요청한다.
누구나 쓰고 있는 것을, 누구나 잠시 내려놓을 수 있음을 암시하는 단어 선택이다.
시는 여기서 독자를 몰아붙이지 않는다.
다만 조용히 묻는다.
지금, 무엇을 쓰고 있는가.
~ 이 대목에서 나는 문득, 내가 세상을 볼 때 얼마나 자주 이미 색이 입혀진 눈으로 서 있었는지를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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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일이다’ 명령이 아닌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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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연의 종결은 “일이다”로 닫힌다.
이는 훈계의 문장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스스로에게 건네는 다짐에 가깝다.
“볼 일이다”는 해야 할 의무가 아니라, 피하지 않겠다는 결심이다.
이 절제된 어조 덕분에 시는 도덕률이 되지 않고, 생활의 리듬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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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연, 시의 청각을 회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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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쳐가는 / 바람의 말도”라는 구절에서 시는 시각 중심의 인식을 내려놓고 청각의 세계로 이동한다.
바람은 붙잡을 수 없고, 말은 남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새겨듣는다’는 표현은, 사라지는 것 속에서 의미를 건져 올리려는 시인의 태도를 드러낸다.
시는 여기서 기술이 아니라 감응의 능력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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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겨듣다’ 느린 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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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다’에 ‘새기다’가 결합되며 시간의 속도가 늦춰진다.
즉각적인 반응이 아니라, 숙성된 응답의 영역이다.
이 느림은 현대의 소음과 대비된다.
시인은 빠른 해석보다 느린 귀를 선택한다.
이 선택이 곧 이 작품의 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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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연, 사유의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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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연에서 시는 외부 세계에서 내부로 이동한다.
“생각을 / 되새김하여 / 가다듬을”이라는 반복적 동사는 시적 영감보다 사유의 노동을 강조한다.
시는 번뜩임의 산물이 아니라, 다듬고 정리하는 시간의 결과라는 인식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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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 의미의 농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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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행은 짧고, 호흡은 고르게 끊긴다.
군더더기 없는 형식은 이 시의 내용과 정확히 겹친다.
벗고, 듣고, 가다듬는 일.
형식 또한 그 세 동작을 반복한다.
시조의 미덕이 윤리와 형식의 일치에 있음을 이 작품은 조용히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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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준비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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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에서 시인은 주장하지 않는다.
대신 준비한다.
눈을 준비하고, 귀를 준비하고, 생각을 준비한다.
말은 그다음의 문제다.
이 전도된 순서가 이 작품의 핵심이다.
시는 말보다 앞서, 침묵의 질서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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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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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묻지 않는다.
무엇을 쓸 것인가.
대신 이렇게 남는다.
어떤 상태로 세상 앞에 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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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시는 시론이 아니라, 시 이전의 자리에서 오래 머문다.
조용히, 그러나 단단히 오래도록
되새기며 세상을 보고,
다시 가다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