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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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민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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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완 시인
별은 언제나 있다
하얀빛에 가려
잠시 사라질지언정
별은 언제나 거기에 있다
길은 언제나 있다
어두운 절망 속에서
방황하고 헤맬지라도
그 또한 가고 내야 할 길
사랑은 언제나 있다
이별의 고통 속에서
무너지는 상처를 부둥켜안고서도
지키고 기다리는 몸부림
별은 사라져도
별빛은 수백 광년을 건너와
하얀빛이 사라진 밤하늘에 반짝인다
있어도 보지 않고 볼 수 없는
없어도 볼 수 있고 기다리는 초원의 꽃눈
별은
그래서 있고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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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낮게, 그러나 단단하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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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언제나 있다.”
이 문장은 선언처럼 보이지만, 실은 스스로를 붙드는 문장이다.
세계를 향한 주장이라기보다, 흔들리는 마음을 향한 말이다.
이 시는 독자를 설득하려 들지 않는다.
먼저 화자 자신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내뱉는 한 문장으로 출발한다.
그래서 이 시의 첫 행에는 힘이 있지만 과장이 없다.
믿음이 아니라 태도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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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는 것은 어둠이 아니라 하얀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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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가리는 것은 밤이 아니다.
오히려 ‘하얀빛’이다.
이 선택은 이 시의 시선을 분명히 보여준다.
절망보다 더 위험한 것은, 너무 많은 빛이다.
과잉된 설명, 즉각적인 위로, 쉽게 덧붙여지는 의미들.
별은 그런 빛 속에서 보이지 않는다.
이 시는 어둠을 탓하지 않고,
빛의 소음을 조용히 의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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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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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또한 가고 내야 할 길.”
이 문장은 이 시의 윤리적 중심에 해당한다.
길은 기다리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걸어야만 생긴다는 인식.
방황과 헤맴조차 실패로 규정하지 않고
길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이 시를 체념에서 멀어지게 한다.
여기서 화자는 멈춘 사람이 아니라
계속 이동 중인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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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감정이 아닌, 지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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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에서 사랑은 따뜻하지 않다.
“몸부림”이라는 말이 선택된 이유가 분명하다.
사랑은 안정된 상태가 아니라,
무너지는 와중에도 놓지 않으려는 행위다.
상처를 없애지 못해도,
그 상처를 껴안고 남아 있으려는 마음.
이 시는 사랑을 아름답게 그리지 않는다.
대신 오래 버티는 방식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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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것과 도착하는 것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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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별빛은 도착한다.
이 간극은 시간에 대한 시의 인식이다.
지금 우리가 보는 빛은
이미 사라진 별에서 왔고,
지금 우리가 받는 위로는
이미 지나간 누군가의 선택에서 왔다.
이 시는 현재를 고립시키지 않는다.
시간은 늘 어긋난 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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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아닌, 꽃눈이라는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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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에서 희망은 피어 있지 않다.
아직 열리지 않은 ‘꽃눈’이다.
초원의 꽃눈은
보이지 않지만 준비되어 있고,
없어 보이지만 계절을 기다린다.
희망을 성취의 결과로 두지 않고
견딤의 상태로 두는 이 선택은,
이 시의 전체 태도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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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지 않음과 볼 수 없음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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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도 보지 않고 볼 수 없는”
이 문장은 존재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를 건드린다.
별은 없어서 안 보이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아직 바라보지 않았을 뿐이다.
이 시는 세계의 부재를 말하지 않는다.
감각의 지연을 말한다.
그래서 이 시는 조급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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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민이라는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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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민은 떠도는 사람이 아니다.
머무르되 집착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 시의 화자는 별을 소유하지 않는다.
별을 기준 삼아 방향을 잡을 뿐이다.
정착하지 않기에,
오히려 계속 이동할 수 있다.
이 시에서 유목은 불안이 아니라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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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있다는 말의 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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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의 “그래서 있고 / 그리고 있다”는
결론이 아니다.
중단되지 않는 현재형이다.
증명되지 않아도 존재하고,
확인되지 않아도 거기에 있는 것들.
이 시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오늘을 건너가게 한다.
별은 그렇게, 말보다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