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문학박사 김민정 시조~마술》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



마술


김민정 시조


팽팽히 잘 조여진

시계태엽 같은 봄이


목련 봉오리에

시간을 풀고 있다


그러자

흰나비 떼가

날개 활짝 펼쳐 든다




마술, 시간은 어떻게 꽃이 되는가


나는 목련 앞에 서면 늘 잠시 멈춘다.

저 봉오리 속에서, 내 지난 계절도 함께 풀리는 것 같아서다.

김민정 시인의 〈마술〉은 짧다.

그러나 이 짧은 시 속에는 한 계절의 압축이 들어 있다.

봄은 오지 않는다.

봄은 풀린다.

이 차이를 포착하는 순간, 시는 단순한 계절 묘사를 넘어선다.


태엽 같은 봄 긴장의 계절에


“팽팽히 / 잘 조여진 / 시계태엽 / 같은 봄이”


봄을 ‘태엽’에 비유한 감각은 정확하다.

우리는 흔히 봄을 부드러운 계절로 생각하지만, 이 시의 봄은 팽팽하다.

겨울을 통과하며 응축된 힘, 얼어붙은 숨, 기다림의 밀도가 팽팽히 감겨 있다.

태엽은 멈춘 시간이 아니다.

곧 움직일 시간이다.

봄은 이미 준비되어 있던 계절이다.

다만 아직 풀리지 않았을 뿐이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다만 풀린다


“목련 / 봉오리에 / 시간을 / 풀고 있다”

이 대목에서 시는 비로소 마술이 된다.

시간은 흘러간다고 우리는 배워왔다. 그러나 이 시는 다르게 말한다.

시간은 어딘가에 감겨 있다가, 적절한 순간에 풀린다고.

목련 봉오리는 단순한 꽃눈이 아니다.

그 안에는 겨울의 시간, 참고 있던 빛, 기다림의 온도가 함께 감겨 있다.

꽃이 피는 것은 색이 드러나는 일이 아니라

시간이 열리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목련 앞에서, 시간이 열리는

소리를 듣는다."


나비의 순간, 압축에서 비상으로


“그러자 / 흰나비 떼 / 날개 활짝 / 펼쳐 든다”


목련은 나비가 된다.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그러자”라고만 한다.

시간이 풀리는 순간, 꽃은 나비로 변한다.

이 장면은 논리적 설명이 아니라 감각의 환희다.

정지에서 비상으로.

압축에서 확장으로.

이 시의 리듬은 바로 그 전환의 순간에 있다.


마술의 본질


이 시에서 마술은 요란하지 않다.

기교가 아니다.

겨울이 봄으로 넘어가는 그 조용한 변환,

보이지 않던 시간이 눈앞에서 꽃으로 풀리는 그 찰나에 시인은 자연의 변화를 ‘시간의 해방’으로 읽는다.

그 시선이 곧 마술이다.


시는 시간을 꽃으로 바꾸는 일


김민정 시인의 〈마술〉은 봄을 말하면서 시간의 본질을 건드린다.

시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감겨 있다가

적절한 순간

꽃으로 풀린다.

그래서 우리는 매년 봄을 처음 보는 것처럼 놀란다.

어쩌면 시란 결국

시간을 꽃으로 바꾸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평론마저

그 꽃 앞에서

잠시 멈추어 서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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