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심언섭 시인 차마고도의 한》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



〈차마고도의 恨〉


시/심 언섭


말의 숨이

고개마다 끊어지던 길


차 한 잔의 값이

사람의 목숨이 되던

그 세월을

산은 알고 있었습니다


돌길에 박힌

발자국들은 이름도

알리지 못한 채

돌아갈 곳 없이

바람 속으로

닳아 없어졌습니다


짐이 무거워서가

아니라

사람의 사연이

너무 무거워서…


넘어지면

그 자리가 길이 되었고

일어서면

다시 짐을 져야 했던

삶을…


그 恨을

차마고도는

아직도

말없이

끌어안고 있습니다.


~~~~~~~~~


길 위에 새겨진 인간의 역사

이 작품은 공간을 노래하면서도 결국 인간을 말한다. 차마고도라는 거대한 길은 지리적 통로가 아니라, 삶이 통과해 간 시간의 결이다.

‘말의 숨’이 끊어지던 고개라는 첫 구절은 자연의 험준함보다 생명의 위태로움을 먼저 떠올리게 하며, 길을 인간의 호흡과 포개 놓는다.

독자는 이미 풍경이 아니라 생존의 현장 한가운데에 서게 된다.



교역의 길에서 생명의 무게로

“차 한 잔의 값이 / 사람의 목숨이 되던”이라는 대목은 경제와 생명의 등가성을 드러낸다.

차는 문명의 상징이지만, 그 문명을 떠받친 것은 이름 없는 이들의 희생이었다. 사소해 보이는 일상의 물건이 목숨의 무게로 전환되는 순간, 독자는 역사의 이면을 마주한다. 산이 ‘알고 있었다’는 표현은 자연을 증언자로 세워 인간사의 비극을 더욱 묵직하게 만든다.



이름 없는 존재들에 대한 애도

돌길에 박힌 발자국은 기록되지 못한 역사다.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진 사람들, 돌아갈 곳조차 잃은 삶들이 바람 속에서 닳아 없어진다.

시는 영웅을 부르지 않는다.

대신 무명(無名)의 존재들을 호명하며, 사라짐 자체를 기억의 자리로 끌어올린다.

이 절제된 애도가 작품의 윤리적 깊이를 만든다.



무게의 본질에 대한 통찰

“짐이 무거워서가 아니라 / 사람의 사연이 / 너무 무거워서”라는 구절은 이 시의 중심축이다. 육체의 피로가 아니라 삶의 서사가 인간을 짓누른다는 깨달음이다. 보이지 않는 내면의 중량이야말로 인간을 휘청이게 한다는 통찰은 독자의 가슴을 오래 붙든다. 물질적 고단함을 넘어 존재론적 무게로 시선을 끌어올린다.



넘어짐과 길의 역설

넘어지면 그 자리가 길이 된다는 표현은 삶의 아이러니를 품는다.

실패와 좌절이 사라짐이 아니라 새로운 통로가 된다는 역설. 인간의 고통이 역사를 만든다는 진실이 담담하게 놓인다. 이 장면에서 길은 더 이상 땅 위의 흔적이 아니라, 인간의 몸과 시간이 빚어낸 결과물이 된다.



반복되는 생의 구조

일어서면 다시 짐을 져야 했던 삶. 여기에는 순환의 구조가 있다.

고단함은 끝나지 않고, 삶은 다시 시작된다.

체념도 원망도 없이 이어지는 문장은 오히려 더 큰 울림을 만든다. 시는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대신 묵묵함으로 인간 존재의 숙명을 드러낸다.



‘恨’의 정서와 동양적 미학

제목의 ‘한(恨)’은 개인감정이 아니라 공동체의 정서다. 풀리지 않은 슬픔, 말하지 못한 사연, 세월 속에 눌린 마음들이 응축된 감정. 이 한은 폭발하지 않고 끌어안긴다. 차마고도라는 공간이 거대한 품이 되어, 인간의 비애를 말없이 받아내는 모습은 동양적 정서의 깊은 결을 보여준다.



말없음의 울림


마지막 행의 ‘말없이 끌어안고 있습니다’는 이 시의 태도이자 미학이다. 설명하지 않고, 과장하지 않고, 다만 안는다.

침묵은 가장 큰 언어가 되고, 절제는 가장 깊은 표현이 된다. 그래서 이 작품은 읽는 이를 소리 없이 오래 붙든다.

길은 말이 없지만, 그 침묵 속에서 인간의 시간이 천천히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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