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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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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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深 심언섭
어머니 떠나신 지 십여 년
그 먼 길 무사히 도착은 하셨는지요
기별 한 번 오지 않는 걸 보니
그곳 소식 전해오는 데도 또 십여 년,
아니 그보다 더 걸리려나 봅니다
소식이 더디 오면 어떻습니까
그 긴 기다림의 끝자락에서 나 또한
어머니 계신 그 푸른 별 — 안드로메다 곁으로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걸요
어머니, 조금만 더 계셔 주십시오
이 우주의 길 위에서
우리 기어이 만나는 날
못다 한 소식을 별빛처럼 쏟아내며
당신 품에 깊이
안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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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까지 이어진 그리움, 그리고 기다림의 존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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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를 우주로 확장한 시적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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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어머니의 부재라는 개인적 상실에서 출발하지만, 그 감정을 단순한 회상의 차원에 머물게 하지 않는다. 시인은 ‘안드로메다’라는 초월적 공간을 호출함으로써, 애도를 시간과 공간의 극한까지 확장시킨다.
이는 “저 하늘에 계신다”는 관습적 표현을 넘어, 상실을 보다 구체적이고도 물리적인 거리로 재구성하려는 시적 의지다. 이때 우주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그리움이 도달해야 할 실존적 좌표로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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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시간 — 기다림의 서사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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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 년”, “또 십여 년”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시간의 누적이 아니다.
이 반복은 선형적 시간이 아니라, 체험된 시간의 층위를 형성한다.
기다림은 더 이상 어떤 사건을 향한 감정이 아니라, 삶 전체를 구성하는 방식이 된다.
이 시에서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쌓인다. 그리고 그 축적된 시간 위에서, 화자는 여전히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즉, 이 시는 애도의 정서를 ‘기다림의 존재론’으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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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의 문장 ~ 감정의 절제와 내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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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이 더디 오면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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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문장은 시 전체의 정서를 바꾸는 중심축이다.
여기에는 원망도, 절망도 없다. 대신 받아들임이 놓인다.
이 지점에서 감정은 외부로 분출되지 않고, 내면으로 깊이 가라앉는다.
이는 슬픔이 소멸된 상태가 아니라, 충분히 성숙하여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상태, 곧 정서의 절제이자 내면화다.
이 문장을 기준으로, 이 시는 ‘상실의 시’에서 ‘견딤의 시’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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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메다 — 초월적 공간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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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메다는 단순한 우주의 이미지가 아니다.
그곳은 닿을 수 없을 만큼 멀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장소다.
이 거리감은 죽음 이후의 세계를 구체화하는 동시에, 인간이 끝내 도달할 수밖에 없는 방향성을 암시한다.
따라서 안드로메다는 환상이 아니라, 믿음의 공간이며 기다림의 목적지다.
이 시에서 우주는 추상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희망의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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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히’ — 존재 태도의 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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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히 걸어가고 있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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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단어는 화자의 존재 방식을 압축한다.
서두르지도, 멈추지도 않는다.
이것은 의지의 과시가 아니라, 받아들인 삶의 리듬이다.
‘묵묵히’는 감정이 아닌 태도이며, 애도를 견디는 인간의 가장 깊은 방식이다.
이 시는 무엇을 느끼는가 보다,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보여주는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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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별’과 ‘별빛’ — 감정의 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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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별”, “별빛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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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어들은 차갑고 먼 우주를 따뜻한 정서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푸른 색채는 거리와 고독을 암시하면서도, 동시에 평온과 생명의 이미지를 지닌다.
특히 “별빛처럼 쏟아내며”라는 표현은, 오랫동안 눌려 있던 말들이 한순간에 흘러나오는 정서적 해방을 보여준다.
이때 그리움은 더 이상 무거운 감정이 아니라, 빛으로 전환된 기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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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서 품으로 — 상징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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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가장 인상적인 구조는
우주로 확장된 감정이 다시 ‘품’으로 돌아온다는 점이다.
안드로메다라는 초월적 공간에서 시작된 여정은, 결국 “당신 품”이라는 가장 인간적인 감각으로 귀결된다.
이는 상징의 축소가 아니라,
오히려 초월과 일상의 통합이다.
우주적 거리마저 결국 한 번의 포옹으로 수렴된다는 점에서, 이 시는 인간적 온도의 회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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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를 넘어 삶으로 견딤의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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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단순히 죽음을 애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그 이후의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다.
기다림을 선택한 화자의 태도는, 상실을 극복하는 방식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래서 이 시는 슬픔을 말하면서도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조용히 서 있다.
이 고요함은 포기가 아니라, 삶을 끝까지 지켜내는 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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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으로 완성되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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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큰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오래 남는다.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은 별까지 뻗어나가지만,
그 감정의 본질은 결국 한 걸음 한 걸음 이어지는 삶 속에 있다.
이 작품은 애도의 시이면서 동시에,
기다림이라는 방식으로 사랑을 지속하는 시다.
그리고 그 기다림 끝에서,
인간은 다시 한번 품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