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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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고독의 마지막 문장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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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문화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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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끝에서 남는 말은 대개 짧습니다.
그러나 그 짧음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마지막 수업에서 이어령 선생께서 남기신 고백은, 한 시대를 건너온 지성이 스스로에게 내린 가장 엄정한 판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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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은 받았으나 사랑은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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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은 단순한 회한이 아니라, 삶의 구조를 꿰뚫는 통찰입니다.
선생님은 평생 앞을 향해 걸어오신 분이었습니다.
문학평론가로, 사상가로, 문화 행정가로
늘 시대의 중심에서 세계를 읽고, 언어를 세우고, 의미를 만들어 오셨습니다.
그 길은 분명 빛나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빛은 때로 사람을 멀어지게 합니다.
존경은 거리를 두고 이루어지고,
사랑은 가까이에서만 자랍니다.
누구보다 높이 서 계셨기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지만,
정작 곁에 앉아 아무 말 없이 웃어줄 사람은
점점 멀어졌을지도 모릅니다.
틀리지 않으려는 삶은
흔들리지 않으려는 삶이 되고,
흔들리지 않는 삶은
기댈 자리를 스스로 비워두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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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평생 사유의 빈틈을 메우며 살아오셨습니다.
언어의 결을 다듬고, 시대의 균열을 짚어내며
하나의 완결된 세계를 구축해 오신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완결될수록
오히려 외로워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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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친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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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백은 관계의 숫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늙어갈 수 있는 존재의 부재를 말합니다.
친구란,
같이 성공하는 사람이 아니라
같이 늙어가는 사람입니다.
같이 빛나는 사람이 아니라
같이 고민해도 괜찮은 사람입니다.
이어령 선생께서는 수많은 사람과 마주 앉아 말씀을 나누셨지만,
그 대화는 늘 의미를 향해 있었지
관계를 향해 머무르지는 못하셨던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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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말년의 선생께서는
뜻밖에도 ‘수다’의 가치를 말씀하십니다.
정기적으로 만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그 시간을 삶의 본질이라 하셨습니다.
수다는 목적이 없습니다.
결론도, 성과도 없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쓸모없음 속에서
사람은 비로소 ‘역할’이 아닌 ‘존재’로 남습니다.
직함도 내려놓고, 성과도 내려놓고
그저 한 사람으로 앉아 있는 시간.
이어령 선생께서는 그 시간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셨기에
더 절실하게 그 가치를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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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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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은 겸양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냉정한 진술로 다가옵니다.
사회가 주는 성공과
삶이 주는 충만함은 다르다는 것을
선생께서는 마지막에 이르러 분명히 짚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고백은 한 개인의 회한을 넘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향한 질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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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와 함께 늙어가고 있는가.
손 안의 화면 속에서는 수많은 이름이 오가지만,
정작 마음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
선생께서 남기신 마지막 가르침은
어쩌면 이 한 문장으로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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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결국
누구와 함께 하였는가로 완성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