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나의 잠꼬대

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by 박성진

박성진 문화평론가



나의 잠꼬대



이 시대는

너무 쉽게 잊는다


손 안의 빛 하나로

하루의 슬픔을 지우고


짧은 웃음으로

긴 역사를 덮는다


사람들은 말한다

통일은 오래된 말이라고


그러나


밤이 오면

한 장의 지도도


가슴에서는

찢기지 않는 하늘이 된다


나는 그 아래서

아직 불리지 못한 이름을

조용히 부른다


나는 왜

이 땅의 허리를 가른 선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는가


비무장지대


바람은

둘로 나뉘지 않는데


사람의 마음만

서로를 건너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그 앞에 서면


이미 한 사람이 아니고


지워지지 않는 이름 둘이

하나의 가슴으로 흔들린다


부르지 못한 이름들

돌아오지 못한 발걸음들


저녁은

오래된 슬픔을 끌고

이 땅 위에 내려앉는다


윤동주가 이 밤을 보았다면

별 하나마다

잃어버린 이름을 적었을 것이다


부끄러움은

한 사람의 몫이 아니라


끝내 만나지 못한

시간 전체의 무게


강물은 흐르는데

마음만 멈춰 있다


나는 오늘도

말보다 깊은 곳에서

하나의 이름을 부른다


언젠가


철조망이 녹아

흙으로 돌아가고


아이들의 웃음이

길을 가르지 않는 날


나는 들판에 서서

해를 향해 고개 드는

한 송이 해바라기 되리라


이 땅은

처음부터 하나였으므로


아주 늦은 저녁

세계의 큰 이름들,

도널드 트럼프 같은 이들이

지도를 접었다 펴는 동안에도


나는 믿는다


이 작은 땅의 심장은

끝내 나뉘지 않는다는 것을


그날


이름이 먼저 울고

강물이 먼저 대답할 것이다


남과 북은

서로를 부르다

마침내 하나의 목소리가 되고


이 땅은


다시


하나의 이름으로

일어설 것이다


그리고


그 이름은

국경을 넘고

바다를 건너


세계의 한가운데서

조용히 빛날 것이다


힘이 아니라

상처를 건너온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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