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문학평론가
박성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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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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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란
눈길 머문 곳마다
솟아 흐르는 샘물
모서리진 곳마다
풀어 갈 생명
그리하여
발 딛는 곳마다
피어나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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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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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음을 밟으며
봄의 음을 밟으며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이 계절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달력은 날짜를 넘기고
햇살은 각도를 바꾸지만
봄은 그렇게 오지 않는다
어느 날
무심히 내디딘 발끝에서
조용히 금이 간다
얼어붙은 마음의 가장자리
그 미세한 균열 사이로
한 줄기 물이 스며든다
그 물은
소리보다 먼저 떨리고
빛보다 먼저 흔들린다
누군가는 그것을
바람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그것을
시간이라 부른다
그것은 아직 이름 붙지 않은
살아 있음의 시작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심스럽게 걷는다
발 딛는 자리마다
무언가가 깨어날까 봐
내가 지나간 자리마다
하나의 시가 남을까 봐
그리고 언젠가
그 모든 발자국이 모여
한 곡의 음악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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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아래에서 봄날의 세계, 그리고 들려오는 음악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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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시를 처음 읽으면, 너무 짧아서 잠시 당황하게 된다.
말이 적다는 것은 종종 빈약함으로 오해되지만, 이 작품은 그 반대다.
이 시는 말을 덜어낸 것이 아니라, 말을 놓아버린 상태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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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시는 읽는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추게 만든다. 그리고 봄날의 향연에
빠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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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 머문 곳마다 솟아 흐르는 샘물”이라는 첫 행은
이미 세계를 바꾸어 놓는다.
우리는 보통 샘물을 ‘흐르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 시에서 샘물은 흐르기 전에 먼저 ‘솟는다’.
이 차이는 작지 않다.
흐름은 결과이고, 솟음은 시작이다.
정해란의 시는 결과를 말하지 않는다.
언제나 시작의 순간만을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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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사계,
특히 그중에서도 ‘봄’의 첫 악장을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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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비발디의 이 음악은
유명한 만큼 익숙하지만, 사실은 매우 섬세한 작품이다.
처음 울리는 바이올린의 음은
어떤 거대한 서사를 끌고 나오지 않는다.
그저 가볍게, 그러나 분명하게
하나의 시작을 알린다.
그 음은 마치
이 시의 첫 행처럼
어디선가 갑자기 솟아오른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 음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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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언제나 작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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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지 않는 변화,
말로 설명되지 않는 떨림,
누군가는 그냥 지나쳐버릴 아주 미세한 움직임.
정해란 시인의 시는 바로 그 지점을 놓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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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서리진 곳마다 풀어 갈 생명”이라는 구절은
이 시의 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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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서리라는 말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거친 부분,
관계의 틈,
시간 속에서 굳어버린 감정의 형상을 뜻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각지게 만든다.
상처를 피하기 위해
단단해지고
무너지지 않기 위해
굳어간다.
그렇게 생겨난 수많은 ‘모서리’는
결국 우리를 지키는 동시에
우리를 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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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시는 말한다.
봄은 그 모서리에서 시작된다고.
둥근 곳이 아니라
부드러운 곳이 아니라
가장 거칠고 날 선 곳에서
생명은 풀린다고.
이 지점에서 이 시는 단순한 자연시를 넘어선다.
이것은 존재에 대한 시다.
우리는 보통 변화가
외부에서 온다고 믿는다.
계절이 바뀌고
환경이 달라지고
무언가 새로운 일이 생기면
삶도 바뀐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시는 그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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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딛는 곳마다 피어나는 시”
이 한 줄은
세계의 중심을 바꿔버린다.
봄은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디딘 자리에서 시작된다.
이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존재는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세계를 생성한다는 선언이다.
내가 걷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내가 머물지 않으면
아무것도 피어나지 않는다.
이때 시는 단순한 언어가 아니다.
시란
세계가 열리는 방식이며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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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에서 음악과 시는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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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디의 「봄」을 다시 떠올려보면
그 음악은 단순히 자연을 묘사하지 않는다.
새가 지저귀고
물이 흐르고
바람이 스치는 장면들이 있지만
그 모든 것은 하나의 더 깊은 감각을 향한다.
그것은 ‘깨어남’이다.
굳어 있던 리듬이 풀리고
멈춰 있던 흐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봄’이라고 부른다.
정해란 시인의 시는
그 순간을 소리 대신 발걸음으로 바꿔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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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귀로 시작되지만
이 시는 발로 시작된다.
그래서 이 시를 읽고 나면
어딘가를 걷고 싶어진다.
조용히
아주 천천히
내가 디디는 자리를 느끼면서
혹시 그 아래에서
무언가가 솟아오르고 있지는 않은지
가만히 귀 기울이면서
그리고 문득 깨닫게 된다.
우리는 이미 수없이 많은 봄 위를
지나왔다
그러나 그때마다
그 시작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다
이 시는 그 사실을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일러준다.
거창한 언어 없이
과장된 감정 없이
단 세 개의 장면이 돋보인다
이 시는
문장의 길이가 아니라
여운의 길이로
읽고 난 뒤에도
한동안 마음속에서 계속 걸어 다니는 시로
발 딛는 자리마다
다시 피어나는 시로 꽃 피우기를 바라며
짧은 시에 긴 여운이 남는 "봄날"의 시가
사계의 시로 이어져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