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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알송알 May 27. 2024

뼈가 부러졌던 내 손가락은 언제쯤 엄지척이 될까

깁스만 풀면 다 나은 줄 알았다


“뼈는 잘 붙었습니다.”


깁스를 6주 만에 풀면서 의사가 말했다. 듣는 순간 기분이 잠깐 이상했다. 잘 붙었다는 뼈에 붙어있는 ‘는’이라는 조사가 주는 찜찜한 기분이 잠시 생겼지만 깁스를 푼다는 사실에 금세 사그라들었다. 부러졌던 뼈는 잘 붙었고, 갑갑했던 깁스를 드디어 푸는데 뭐가 문제라. 드르륵드르륵 거리는 깁스를 자르는 톱 소리마저 정겹게 들렸다.


“어? 왜 이러지? 왜 손가락이 구부릴 수 없는 거지?”

깁스를 풀었는데, 뼈는 잘 붙었다는데 손가락을 여전히 움직일 수 없었다. 깁스만 풀면 이전 상태로 곧장 복귀할 줄 알았다. 다친 손가락은 그렇다 해도 멀쩡했던 손가락마저 움직이지 않았다. 의사가 돌팔이였나 의심이 들었다. 세상에. 이제부터 시작이란다. 물리치료와 재활 운동을 열심히 해야 한다나. 재활이라는 말은 운동선수의 부상 소식에서나 듣던 말이다. 그게 이런 거였구나.


집으로 돌아와 6주 동안 켜켜이 쌓인 각질을 제거했다. 좋게 말해서 각질이지 때다.  화장실 하수구가 막힐까 걱정될 정도로 많았다. 혹시 내 손가락이 잘 움직이지 않는 것은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때’가 관절을 누르고 인대의 움직임을 방해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때가 너무 많아서 별별 생각이 들었다. 물론 왼손의 때를 다 밀어도 손가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른손잡이가 왼손을 다쳤으니 조금 불편해도 일상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늘 꿈꾸던 살림에서 해당되었는데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뭐라도 있어야 살림에서 벗어난 자유를 누리든가 말든가 할 텐데. 왼손의 역할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동안 왼손이 하는 일을 몰라봐서 미안할 정도다.


옷 갈아입기가 힘들었다. 윗옷은 각오했지만 바지마저 입기 힘들 줄 몰랐다. 화장실에서 쑥 하고 올라가지 않는 바지춤을 잡고 흘린 눈물이 한 바가지이다. 단추구멍에 단추 끼우는 일이 이렇게나 어려울 줄이야. 신발끈을 묶을 수도 없었다. 병뚜껑을 열지 못했다. 과자 봉지를 뜯지 못해 많이 먹는다는 잔소리를 들으며 과자를 먹어야 했다. 나중에는 과자 봉지는 가위로 자르기는 했는데 가위질도 쉽지 않았다. 치약 짜는 것도 , 샴푸 짜는 것도 버거웠다. 타이핑도 힘들었다. 평소 독수리 타법을 구사하는 사람이기에 오른손만으로 충분히 가능할 줄 알았다. 그게 아니더라. 좌우 균형이 맞지 않아 그런지 왠지 모르게 불편했다. 다행히 숟가락질은 평소처럼 할 수 있어 밥은 잘 먹었다. 정말이지 밥만 잘 먹었다.


조금씩 손가락이 움직였다. 어느 정도 손가락을 굽히고 물건을 잡기까지 2주 정도 걸렸다. 그리고 2달이 지난 지금 더 이상 좋아지지 않는다. 아직도 주먹을 쥘 수가 없다, 처음과 달리 너무나 미세한 변화라서 내가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나이가 많아서, 골밀도가 낮아서, 관절이 약해서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나. 끝은 있기는 한 건가. 평생 왼손으로는 엄지 척은 못 하는 건가. 엄지 척은 못해도 일상생활은 가능해졌다. 그래도 주먹을 쥘 수 없는 손은 여전히 불편하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기운이 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시무룩하고 의기소침하고 무기력하게 시간들을  보내다가 오늘에서야 일기를 겨우겨우 쓰기 시작했다. 몇 달 만이지? 이렇게라도 기운을 내 볼 마음이 들었으니 다행인가. 아, 모르겠다.

깁스 풀 날만 기다렸는데, 끝이 아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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