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야? 야자 끝난 지가 언젠데. 곧장 집으로 안 오고 뭐 해?”
“나, 김천인데? “
“뭐? 김천? 김천에 갔다고? 왜? 그 먼 곳을 어떻게 갔어?”
첫째 아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이야기이다.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로 기억한다. 입학초기, 학교는 면학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야간자율학습에 무조건 참석하라고 했다. 나도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었으니 학업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 내심 야자를 반겼다. 그때까지 아이 혼자 밤거리를 다니게 한 적이 없었지만 학교와 집이 워낙 가까워서 걱정이 들다가 말았다. 어련히 알아서 잘 귀가하겠지. 밤 10시에 야자를 마치고, 느릿느릿 천천히 걸어도 30분이면 집에 도착하고 가방을 내려놓고 교복을 벗을 수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학교에 있어 피곤하다, 학교에 있다고 공부가 잘 되는 것 아니잖느냐, 강제 학습이면서 자율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말도 안된다는 등등 불만이 많았고 여차하면 야자 빠질 궁리는 하는 것 같았지만 그럭저럭 적응하고 있었다.
언제였더라. 그날은 11시가 되었는데도 아이가 돌아오지 않았다. 컴컴한 밤거리에서 사고 났나? 아니면 아이들과 몰려다니다 사고를 냈나? 10시 30분이 되자마자 전화를 걸어 확인하고 싶었으나 30분을 더 기다렸다. 걱정과 초조로 30분을 보내고 전화를 했다. 김천에 있다고 해서 놀라 기절할 뻔했다. 그 시간에 경상북도 김천에 왜 있냐고? 김천에 어떻게 갔지? 왜 갔지? 고등학생 되자마자 학교와 집에서 공부하라고 닦달을 해서 스트레스를 받았나? 공부하기 싫어서 대구 할머니집으로 도망가려고 했나. 대구 가는 길인데 지금은 김천을 지나고 있다는 말인가? 짧은 순간이었지만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야자 끝나고 김천에 친구들이랑 라면 먹으러 왔는데”
“김천에서? 라면을 먹는다고? 지금 이 시간에 그게 가능해? ”
“김.밥.천.국말이야. 얼른 먹고 들어갈게”
아이고 놀래라. 전혀 몰랐다. ‘김천’이 ‘김밥천국’의 줄임말인 줄 몰랐다. 4글자를 2글자로 줄여본들 얼나마 줄어든다고, 별 걸 다 줄인다 싶었다. 경상도 대구가 고향인 나에게 김천은 직지사가 있는 곳이고, 대구와 구미 근처 도시이고, 김연수 작가의 고향인데 말이다. 놀란 내 모습에 아이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던 오래전 해프닝이 떠오른 것은 김천시에서 김밥축제가 열린다는 기사를 보아서이다.
김천시 사명대사공원에서 10월 26일과 27일 이틀 동안 김밥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김천시의 설명에 의하면 관광트렌드를 이끄는 MZ세대를 대상으로 김천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김밥천국’이라는 답변 때문에 김천김밥축제를 기획했다고 한다. 웃기고 슬픈 줄임말을 유쾌하게 받아들여 새로운 기회로 만드는 모습이 보기 좋다. 덕분에 오랜만에 떠오른 추억에 웃었다.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