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알송알 Sep 03. 2024

이런 스몰토크라면

미장원에서 나눈 책이야기, 참 재미있더라구요


나는 스몰토크가 어렵다. 낯가림이 심해서인가? 말주변이 없어 그런가? 별다른 목적 없는 소소한 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그런가? 암튼 그래서 미장원에 가는 것이 싫다. 미장원이 싫은 것은 아니다. 미장원이 없으면 내 머리카락 손질은 누가 해주랴. 마장원에서 나는 파마약 냄새도 싫지만 스몰토크가 더 부담스럽다. 스몰토크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는 미장원에서 입 꾹 다물고 있기도 민망하고 (그러고 싶지만) 딱히 할 말도 없는데 대화를 하기도 애매하다. 그래서 원장님의 질문에 대답만 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파마 같은 것은 잘하지 않는다.


미장원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자주 가야 한다. 짧은 커트머리 스타일 때문에 한 달에 한 번은 꼭 방문한다. 조금만 길어도 지저분하게 보이고 1cm만 길어도 머리카락이 굉장히 무겁게 느껴진다. 오늘, 한 달 만에 미장원에 다녀왔다. 앞 손님이 있어 가져간 책을 읽으며 차례를 기다렸다. 30분쯤 기다렸나. 드디어 내 차례다.


“무슨 책 읽고 계셨어요?”

“박찬일 세프의 <밥 먹다가, 울컥> 읽고 있었어요.”

“재미있어요?”

“네, 세프는 요리만 잘해도 되는데 말이죠. 이 분은 글도 잘 써요. 하하. 삼시세끼 밥 먹기 힘들었던 어린 시절이야기, 사라져 가는 노포 이야기, 친구와 함께 먹었던 음식이야기 등등 책 읽다가 울컥울컥 해요. 작가와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으로 공감 가는 내용이 많더라고요.”

“오~ 그래요? 저도 읽어 볼게요.”


미장원 원장님과 책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책 이야기가 좋다. 남이 해주는 책이야기는 매우 재미있다. 책을 좋아한다고 하면 독서량이 엄청난 줄 오해를 받는데 그건 아니다. ( 한 달에 2권 정도 겨우겨우 읽는 수준이니 오해 금지입니다.) 암튼 지간 원장님이 최근에 재미있게 읽은 소설 이야기를 꺼내셨다.


“최근에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었는데 너무 좋았어요.”

“그죠? 그죠? 저도 읽었어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요즘 핫한 작가 클레어 키건의 작품이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수녀원에 석탄 배달을 간 펄롱은 석탄 창고에 갇힌 소녀를 발견한다. 그 소녀를 통해 수녀원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법적인 일들을 알게 된 펄롱은 깊은 고민에 빠진다. 펄롱의 시선과 심리를 따라가는, 100쪽 남짓의 책이지만 묵직한 울림을 주는 작품이다. 얼마 전에 감명 있게 읽은 책을 원장님도 재미있게 읽었다니 반가웠다.


짧아서 금세 읽을 줄 알았는데 여백이 많고 행간을 읽어내려면 한 번 읽어서는 안 되더라, 처음에 실화를 기반으로 한 작품인 줄 모르고 읽기 시작했다가 실제 수녀원에서 일어난 아동학대와 착취를 모티브로 했다는 것에 놀랐다, 제목과 달리 전혀 사소하지 않더라. 나라면 펄롱처럼 불의를 보고 모른척하지 않고 행동할 수 있을까, 나와 가족의 생사와 생계에 얽힌 문제라면 마을 사람들처럼 나도 알면서도 모른 척할 것 같다, 펄롱처럼 용기 내는 사람들은 대단하다, 아무도 용기를 내지 않으면 세상이 바뀌지 않을 것이다, 우리도  지금은 쫄보지만 이렇게 좋은 책을 자꾸 읽다 보면 언젠가는 용기를 내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그러니까 책을 읽어야 한다 등등 책 이야기를 하다 보니 순식간에 머리 손질이 끝났다. 재미있었다. 이런 스몰토크라면…


“<H마트에서 울다>도 좋아요..”

“그래요? 저도 읽어 보고 싶네요.”


원장님이 새로운 책을 추천하셨다. 김영하 작가의 추천으로 알고 있었지만 시뻘건 표지가 마음에 들지 않아 손이 가지 않던 책이다. 그런데 미장원 원장님의 추천을 받으니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다음 달에 미장원 가기 전에 꼭 읽어보리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