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국수가 먹고 싶어 육수를 만들었다. 국물용 멸치 10마리, 가로세로 2cm 정도 되는 다시마 10장, 표고버섯 꼬다리 몇 개, 무 조금, 파뿌리 서너 개, 청양고추 1개를 넣고 끓였다. 국물용 멸치는 사 오는 날 정리해서 냉동실에 저장해 두고 쓰기 때문에 육수 내기는 간단하다. 오래 끓이면 진액이 나온다는 다시마는 중간에 건져낸 후 좀 더 육수를 우려냈다
육수가 완성되었다. 이제 육수를 우리는 동안 다듬고 준비한 야채와 면을 차례로 넣고 끓이면 된다. 아참참. 그전에 멸치와 다시마 등등 육수 내기에 쓴 재료를 걸러야 한다. 평소에는 국자 모양의 체로 일일이 건져낸다. 이번에는 살짝 고민을 했다. 국자체로 몇 번에 나눠할 것인가, 체로 한 번에 걸러낼 것인가. 몇 번씩이나 손을 움직일 필요가 있어? 한 방에 해버리는 게 낫지. ‘체’를 선택했다. 육수를 담을 커다란 그릇- 양푼과 체를 수납장에서 꺼내 물로 헹구고는 체 위에 육수를 부었다. 콸콸콸.
옴마야. 육수가 보이지 않는다. 내 육수는 어디로? 육수는 흔적도 없고 국물용 멸치, 다시마. 표고버섯 꼬다리. 무, 파뿌리, 청양고추가 물에 퉁퉁 불어 심술이 났는지 ‘체’ 위에 제멋대로 누워있다. 아뿔싸~ 양푼 위에 체를 두고 육수를 부어야 했었는데 말이다. 에고고~ 양푼 따로 체 따로 두고는 육수를 부었던 것이다. 나의 육수는, 맛있게 우러난 육수는, 칼국수 국물이 되었어야 할 육수는 순식간에 개수대 배수구로 흘러가 버렸다.
털썩. 에휴. 내가 왜 그랬을까? 진한 육수를 위해 한 몸 바친 멸치들이 이 일을 알면 실망이 크겠지? 그냥 아무 이유도 없이 뜨거운 물에 샤워한 꼴이 되었으니 다시마와 버섯의 심정도 참담하리라. 버섯 꼬다리와 무, 청양고추도 짜증이 날 것 같다.
요즘 나는 말하는 도중에 단어 혹은 사람 이름이 입안에서만 맴돌고 생각나지 않을 때가 많다. 이제는 단어가 아니라 일의 과정을 까먹었다. 왜 그랬을까. 곰곰 생각해 보니 평소대로 국자체로 몇 번에 걸쳐 건져내지 않고 한 번에 하려다가 이렇게 된 것이다. 잘 알고 있다고 방심했고 일을 줄이려고 꾀부리다 된통 당한 셈이다. 떠오르지 않은 단어를 기억하기 위해 글을 쓰듯, 이렇게 실수하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글을 써야겠다. 도움이 될까? 도움이 될 거야.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