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작가의 단편집 <바깥은 여름>을 읽고
제목이 의아했다. 7개의 단편을 엮은 김애란 작가의 단편집 <바깥은 여름> 에는 ‘바깥은 여름’이라는 소설이 없었다. 단편집의 제목은 가수들의 앨범을 타이틀 곡 같은 것이라고 나는 알고 있다. 가수들이 몇 개의 노래를 묶어 앨범을 발표하면서 앨범의 주제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곡, 아니면 대중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가능성이 높은 곡을 타이틀로 하듯이 단편집의 제목도 그럴 것이라고 지레짐작한다. 그래서 단편집을 읽을 때는 습관적으로 책의 제목을 가진 작품을 먼저 읽곤 한다. 이번 독서는 ‘바깥은 여름’의 의미 찾기가 되겠구나 했다.
5살 아들을 유치원 버스 사고로 잃은 젊은 부부, 할머니와 단둘이 살던 아이에게 사랑을 가르쳐 준 강아지의 죽음, 취업준비를 하면서 만났지만 취업 후 하나씩 어긋나기 시작하는 연인의 이별, 학과장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교수 임용에 탈락하는 시간강사, 제자를 구하기 위해 계곡물에 뛰어들었다가 돌아오지 못한 남편 등등 이 작품은 이별과 상실을 겪은 후 삶을 버티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휴대전화 속 부고를 떠올리며 문득 유리 볼 속 겨울울 생각했다. 볼 안에서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 <풍경의 쓸모 > 중
태국으로 여행을 떠난 <풍경의 쓸모>의 주인공은 여행 중인데도 틈만 나면 스마트폰을 열어 한국 날씨와 뉴스를 확인한다. 실은 교수 임용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여름이 한창인 태국에서 한파와 폭설이 내린 한국을 보며, 스노우볼 같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부분을 읽고 나서야 책 제목의 의미를 이해했다. 바깥은 시끄럽고 푸르고 왕성한 여름인데,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가슴이 시린 겨울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구나.
우리는 누구나 헤어지고 잃고 이별한다. 누구는 금세 털고 일어나고 또 다른 누구는 오래오래 아프다. 타인의 상처를 어떻게 다 알 수 있겠나. 모르는데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자신만의 착각에서 멈추지 않고 그만큼 슬퍼했으면 충분하다는 등, 강아지 죽은 게 뭐 그리 대수냐는 등, 사귀던 연인의 이별은 일상다반사이니 어쩌니 하며 괜한 오지랖을 부린다. 예전에 친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여든 넘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두고 문상객들이 ’ 호상‘이라는 말을 많이들 했는데 너무 듣기 싫더란다. 아버지를 잃은 딸에게 호상은 없다고. 나이 드신 노인이 크게 아프지 않고 어찌 보면 편하게 돌아가셨으니 호상이라고 한 것인데 남겨진 가족의 슬픔을 헤아리지 못한 말이었다.
우리는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탄식과 안타까움을 표한 이웃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기 시작했는지, 그들은 마치 거대한 불행에 감염되기라도 할 듯 우리를 피하고 수군거렸다. <입동> 중
슬픔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데서 그치면 그나마 다행이다. <입동>에서 다섯 살 영우를 잃은 부부에게 꽂히는 이웃의 시선은 세월호 유가족들을 몰아세우던 무리들을 떠오르게 한다. 보상금이 어쩌고 저쩌고 , 자식을 여의고 밥이 넘어가나 어쩌고 저쩌고, 할 만큼 했으니 그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자 어쩌고 저쩌고 하던 사람들 말이다. 바깥은 여름인데 안에서는 한파와 폭설의 시간을 겪어야 하는 그들의 시차는 나를 포함한 이웃들이 만들지 않았을까? 갑자기 등골이 서늘하다.
<바깥은 여름>의 7편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마음이 춥고 무거웠다. 특히 ‘다른 사람들은 몰라’라고 하던 물기 어린 영우 엄마의 모습이 많이 아리다. 그들의 삶이 흘러가고 여름이 다시 올 수 있을까? 그들의 이웃인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우선은 타인의 상처, 아픔과 슬픔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