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랑 작가의 <피프티피플>을 읽고
피프티 피플 - 한국어로 옮기면 50명의 사람들이라는 제목에서 등장인물이 조금 많겠구나 했다. 하지만 사람 이름만으로 구성된 목차는 상상하지 못했다. 정말 50명 맞나 싶어 한 명씩 세어 보니 무려 51명이다. 단편 소설도 아닌데 하나의 주제를 두고 51명의 서사가 어떻게 엮일지 궁금했다.
수도권의 어느 종합병원과 관련 있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이거나, 아파서 병원에 왔거나, 그들의 가족, 친구, 지인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병원 근처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의사, 간호사, 방사선 기사. 시체 옮기는 전담직원, 병원 보안요원, 병원 앞 베이글 가게의 아르바이트생, 난치병 환자, 건설현장 십장, 임상실험 아르바이트생, 타투이스트 , 닥터헬기 조종사, 골프장 캐디, 재즈 밴드 베이스 연주자 등등이다. 목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지만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람들이 글에 제법 많이 보인다. 왜 제목이 ‘매니피플’ 혹은 ‘피플‘이 아니고 ‘피프티피플’일까? 이렇게 써놓고 보니 ’ 매니피플(수많은 사람들)‘은 제목으로 매혹적이지 않기는 하다. 숫자는 큰 의미가 없을 것 같다. 무슨 의미일까? 궁금하다.
조금 읽다 보니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직접 연관된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3명의 간호사 김인지 오수지 박현지, 문우남과 진선미 부부는 재즈드러머 조희락이 운영하는 재즈카페의 손님으로 나온다. 이기윤이 응급실에서 데이트 폭력 피해자를 살리기 위해 애쓰고 있을 때, 문우남은 귀에 벌이 들어와 병원에 와 있다. 등장인물들의 관계성을 찾는 재미가 있다. 앞에서 언급된 사람이 이 사람인가? 다른 이야기에서 들은 것 같은데 누구였더라? 책을 앞으로 뒤로 왔다 갔다 하며 사람들을 찾게 된다. 누구는 내 이야기 같기도 하고, 내가 아는 사람 누군가의 이야기 같다. 이건 이 책을 읽는 재미다.
병원이 주무대이고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 만큼 사건 사고도 많다. 데이트폭력,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산업재해, 열악한 근로조건, 미흡한 건축 현장 안전, 씽크홀 추락사고, 직장 내 괴롭힘, 방사선 피해, 감정 노동, 자살, 가스 누출 사고, 주 88시간의 근로시간- 작가는 이 많은 사람들과 이 많은 재난 사고를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나의 사고에 집중해야 메시지가 확실하게 전달될 텐데 말이다.
“엄마가 병원에 안 가면 사람들이 죽어. 엄마가 꼭 가야 해.”
“죽어? 몇 명이나?”
“50명이 죽어”
박현지 간호사가 출근할 때마다 울며불며 매달리는 아이에게 해준 말이다. 이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했다.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 같은 일이 발생했고, 50명 모두 죽었고, 이 이야기는 재난 사고 사망자들의 이야기구나. 재난 사고 관련 뉴스에서 사람들은 사망 몇 명, 중상 몇 명처럼 숫자로 표현된다. 그들의 이름과 서사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제목 ‘피프티피플‘의 의미를 알 것 같다.
아무도 죽지 않았다. 유가족을 만들지 않았다. 건물은 기울었을 뿐, 무너지지 않았다. 화재가 완전히 진압되고 반나절만 지나면 잊히고 말 뉴스였다.
다행이다. 사망자가 아닌 생존자들의 서사였다. 현실에서도 이런 해피엔딩이 가능할까? 불가능하게 보이는 건 내가 지나치게 비관적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중대재해처벌법을 악법이라 말하는 대통령 후보 탓도 크다. 화재가 난 건물에서 51명의 사람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서로 돕고 배려한다. 그렇게 살았다. 나는 여전히 비관적이지만, 그럼에도 모두가 안전한 세상을 꿈꾸고 이뤄지길 바란다. 수많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느슨하게 연결되어 세상을 지탱하고 있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