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을 처음 만난 건, 우리 아이들이 갓난아기였을 때다. 이제 막 고개를 가누기 시작한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 주었다. 그렇게 만난 그림책이 참 좋았다. 내 어렸을 때 나는 그림책을 몰랐다. 초등학교( 내가 입학한 곳은 국민학교)에 들어가서 한글을 떼고 동화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이 워낙에 귀한 시절이라 ( 흠… 조선시대 사람 같군? ) 동화책 한 권이 생기면 마르고 닳도록 읽어야 했다. 그 당시는 그림책 출판이 번성하지도 않았지만, 우리 부모님도 그림보다 글이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아이들을 키우면서 알게 된 그림책에 내가 홀딱 반했다. <달님 안녕> <은지와 푹신이> <팥죽할멈과 호랑이> <괴물들이 사는 나라> <지각대장 존> <제랄다와 거인> <마고할미> <개구리네 한솥밥> <빨간 나무>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 <만희네 집> <여우 누이> <아름다운 책> <눈사람 아저씨> <구름빵> 등등 생각나는 그림책들이 많다. 글을 알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 주면서 그림을 보게 되었다. 글자를 읽고 이야기 파악을 우선하는 나에 비해 아이들은 글보다 그림에 집중했다. 그림을 보고 질문하고 상상하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더라. 아이들 덕분에 똑같은 그림책을 읽어도 매번 다른 것을 볼 수 있었다. 재미있었다. 재미 말고도 가끔은 위로를 받았고, 나도 몰랐던 지식을 배우기도 했고, 감동을 느꼈고, 아름다운 그림에 황홀하기도 했다. 그래서 한동안 ‘어른도 그림책’을 읽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평생 그림책을 읽는 어른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랬는데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그림책과 조금씩 멀어졌다. 아이들이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아이들과 함께 <완득이> <짜장면 불어요> <우아한 거짓말 > <기억전달자> <구덩이>와 같은 청소년 문학에 심취했다. 청소년 문학도 그림책 못지않게 재미있었다. 지금은 아이들과 나의 독서는 완전히 다르다. 생각해 보면 아이들을 키우기 전에는 나는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아니었다. 책은 교과서와 자습서가 전부인 줄 알고 살았던 내가 아이들 덕분에 책을 가까이하고, 독서력이 성장했다고 할 수 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이만큼이라도 책을 읽는 사람이 된 것은 아이들 덕분이다.
그림책을 읽었다. 백희나 작가의 <꿈에서 맛본 똥파리>이다. ‘똥‘자만 나오면 자지러지는 아이들 모습을 상상하니 즐겁다. 똥파리를 잡으려고 한없이 늘어지는 개구리 혀를 보고 아이들은 너도나도 따라 하겠지? 그림 보는 재미도 있고 구성도 훌륭한데 결말이 아쉽다. 엄마아빠 개구리는 온 데 간데없고 ( 개구리는 알을 낳고 돌보지 않으니 당연하다. ) 큰오빠 개구리 홀로 동생 올챙이들을 돌본다. 똥파리를 잡아 먹여야 하는 동생 올챙이들이 어마무시하게 많다. 동생들 먹이느라 하루 종일 굶은 큰오빠 개구리는 꿈에서나 똥파리를 맛볼 수 있다. 꿈에서 맛있게 먹고, 다음날 힘을 내어 다시 동생들을 돌본다. 아휴. 동생들 중에 한 마리 정도는 개구리가 되어 큰오빠 개구리를 돕는 결말이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이건 어쩌면 어른들의 시선일지 모르겠다. 아이들은 ‘나도 좋은 오빠나 형아가 돼야지’라고 할 지도?
오랜만에 읽은 그림책. 좋더라. 다음에는 무얼 읽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