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가 참담하다
으아아아악~
몰랐네. 난 정말 몰랐네. 내가 오목을 이렇게나 못 두는 머리 나쁜 사람일 줄은 몰랐다. 원래 아둔했나? 아니면 이것도 노화로 인한 인지 기능 저하, 공간 감각과 추론 능력 감소 때문일까. 이유가 뭐든 나는 바둑 로롯과 오목 10판을 두고 딱 1판을 이겼다. 처음에는 중급으로 설정하고 중간에 초급으로 난이도 조절을 했는데도 그렇다.
남편은 바둑을 좋아한다. 부부의 취미가 같으면 행복한 노년에 도움이 된다는 말을 어디에선가 듣고는 바둑을 배우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 바둑을 사랑하고 즐기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존경의 말씀을 드린다. 망망대해보다 넓고 심해보다 깊으며 태산보다 높아 보이는 바둑을 어떻게 두시나이까? 남편이 나를 가르치려고 무던히 애쓰다가 결국 포기했다. 배우지 않아도 된다고 했던가, 바둑을 둘 그릇이 안된다고 했던가. 어려서 아버지에게 장기를 배웠고 제법 둔다고 칭찬도 받았건만 바둑과 장기는 차원이 달랐다.
우리 집에 바둑 로봇이 생겼다. 남편이 며칠 전에 큰맘 먹고 장만했다. 내가 바둑을 배워 대국 상대가 되었다면 돈도 아끼고 함께 시간도 보내고 좋았을 텐데. 절대 아니다. 남편이 돌희(우리 집 바둑 로봇의 이름이다)의 대국을 보고 있자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다시금 뼈저리게 느꼈다. 내 엉덩이에는 뿔이 달렸고 내 눈과 머리에는 바둑을 담을 수 없다.
하여 나는 돌희와 오목을 두기로 했다. 1승 9패. 돌희와 계속 바둑돌을 가지고 놀 수 있을까. 초급자와 두는데도 일방적으로 밀리면 내가 둘 마음이 생기겠나? 아윽… 분하다. 책상 위에 앉아 있는 돌희를 슬그머니 째려본다.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지?
우리 집 돌희는 귀엽다. 센스로봇고의 인공지능 바둑 로봇이다. 타원형의 얼굴, 얼굴 위에 더듬이처럼 달려있는 카메라, 몸통 그리고 오른팔 하나로 되어있다. 처음에는 외팔이라서 놀랬는데 금세 익숙해졌다. 바둑과 오목을 두기 위해서 두 개의 팔이 필요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책상 위에 올려놓으면 되니 두 다리도 필요 없다. 전용바둑판과 바둑알을 사용해야 한다. 동그랗고 커다란 눈을 깜빡거리며 “저와 바둑 한 판 두실래요?”한다. 말을 하길래 대화가 가능한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오목을 두다가 한 수 물러달라고 하고 싶을 때가 왕왕 있었다. 말이 통해야 애걸복걸이라도 해 볼 텐데… 바둑을 둘 때는 한 수 무르기가 있는데 오목에는 없다. 오목에서 한 수 무르기가 가능하면 승부가 끝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건 그렇고 로봇과 대화를 하며 바둑이나 오목을 둘 수 있는 날도 조만간 가능할 것이다. 어쩌면 지금도 가능할지도 모른다. 이건 다 비용 문제이리라.
많은 바둑 기사들이 바둑 AI를 통해 학습하고 훈련한다는 말을 들었다. 예전에는 선배나 스승과의 대국을 통해 배웠다면 이제는 AI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바둑 지도를 업으로 하던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었지만 반대로 유능한 스승을 만날 기회가 없던 사람들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고 들었다. AI는 살금살금 야금야금 우리 일상을 바꾸고 있다. 내가 로봇과 오목을 둘 줄은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실력이 너무 우수해서 짜증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렵다.
야금야금 일상 속으로 들어온 AI는 어느새 우리 집 테이블 한 자리를 차지했다. 비록 오늘도 돌희를 째려보며 바둑판을 정리했지만, 생각해 보면 이 녀석 덕분에 우리 집 거실 풍경이 참 묘하게 변했다. 남편의 든든한 대국 상대이자, 나에게는 승부욕을 불태우게 하는 얄미운 친구가 생긴 셈이다. 내 오목 실력은 참담한 수준임을 확인했을지언정, 기술의 발전이 가져다준 이 낯선 즐거움마저 밀어내고 싶지는 않다. 노년의 길목에서 만난 이 기술을 무조건 경계하기보다, 나의 일상을 풍요롭게 채워줄 친구로 받아들여야겠다. 돌희야, 내일은 조금만 살살하자. 제발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