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적함을 달래 줄 무언가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울적해서 빵을 샀어.’
이 말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MBTI의 F(감성형)와 T(사고형)를 구분하는 놀이가 유행한 적이 있다. 평소 빵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무슨 빵을 샀는지가 즉각적으로 궁금했다. 그렇다면 나는 F일까, T일까? 울적한 감정에 먼저 공감하지 못했으니 F는 아닌 듯하고, 그렇다고 사실관계의 합리성을 따진 것도 아니니 딱히 T라고 할 수도 없다.
그건 그렇고, 요 며칠 나는 꽤 울적했다. 나는 빵을 사는 대신 ‘스픽’을 켰다. 다시 말하자면 ‘울적해서 스픽했어’가 되겠다. 영어 학습 앱 스픽은 나의 선생님이다. 열정 가득했던 시작과 달리, 요즘은 그저 근근이 이어가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실력은 정체되어 있고 영어로 할 수 있는 이야기도 한정적이다. 허구한 날 무엇을 먹었는지, 좋아하는 음식과 취미는 무엇인지, 주말은 어떻게 보냈는지 같은 이야기만 반복하니 영 재미가 없다. 재미가 없으니 하기 싫고, 하기 싫으니 겨우 시늉만 하게 되는 악순환이다.
며칠 전에는 병원에 다녀왔다. 지병 때문에 3개월에 한 번씩 정기 검진을 간다. 말이 검진이지, 사실 약을 처방받으러 가는 길이다. 간 김에 염증, 간 기능, 관절 검사 등 이런저런 수치들을 확인하고 의사를 만나고 돌아온다. 상태가 더 나빠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기며 살고 있다. 하지만 병원을 다녀오는 날이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가라앉는다. 내 몸이 아파서인지, 하루 종일 병원에서 아픈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동네에서 먼 병원을 오가느라 몸이 고단해서인지 이유는 확실치 않다. 그저 그냥, 울적하다.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보며 멍하니 누워 있다가 문득 ‘스픽’이 생각났다. 아침 일찍 서두르느라 아직 앱을 열어보지 못했다. 스픽은 매일 공부하지 않으면 ‘학습 불꽃’이 꺼진다. 딱히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면서 이 불꽃은 왜 그리 꺼트리기 싫은 건지. 그 심보를 무어라 설명하긴 어렵지만, 울적함에 파묻혀 축 처져 있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었다.
오랜만에 마음을 다잡고 스픽 쌤의 문법 강의를 듣고 말하기 연습과 복습까지 마쳤다. 이어진 프리토킹 시간에는 병원에 다녀온 이야기를 나눴다. 문법이 틀렸다는 지적을 받고, 한국말로는 쉬운 표현이 영어로는 나오지 않아 답답했다. 여전히 잘 들리지 않는 상대의 말에 다시금 울적해졌다. 아이 참, 쉽지 않다.
‘울적해서 스픽했어.’
이 문장에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반응을 보일 것이다. 누군가는 스픽이 무엇인지 검색해 볼 테고, 누군가는 병원을 오간 나의 피곤함을 먼저 걱정할 것이며, 또 누군가는 울적한데 어떻게 공부가 손에 잡히느냐며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의 스픽은 내게 단순한 영어 공부 그 이상이었다. 서툰 문법 때문에 다시 울적해졌을지언정,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던 시간보다는 훨씬 ‘살아있는’ 시간이었다. 단어와 단어 사이를 헤매며 답답해하는 동안, 역설적으로 병원 냄새 짙게 배어있던 울적함은 조금씩 휘발되었다. 영어가 금방 늘지 않아도 좋다. 아니, 사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늘긴 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불꽃을 꺼트리지 않고 계속해야 한다. 내일도 나는 꺼지지 않는 불꽃을 보며, 이 울적함을 가로질러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