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 공부를 하다 보면 아직 내게 어떤 가능성과 기회가 남은 것 같은 착각이 들어서……’
김애란 작가의 소설 <안녕이라 그랬어>에서 비대면 영어 회화 수업을 듣는 은미의 생각이다. 아픈 어머니를 돌보느라 경력이 단절된 45세 여성, 지방 소도시에 살며 엄마의 장례식이 끝나고 유품을 정리하다 발을 다쳐 수술까지 하게 된 은미.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도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녹록지 않는 상황에서 그는 영어공부를 시작한다. 생활에 대한 부담도 만만치 않은데도 말이다.
은미의 마음을 알 것만 같다. 나는 육아에 전념하기 위해 퇴사했다. 당시 나는 ‘아이들을 돌보며 틈틈이 영어 공부나 열심히 해야겠다. 그래야 아이들이 크면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집에서 전공 관련 일을 할 것도 아니니, 영어라는 끈이라도 붙잡고 있어야 어떤 가능성과 기회가 찾아올 건만 같았다. 하지만 육아와 집안일에 지쳐 공부는 엄두도 내지 못했고, 다시 일을 시작할 시도도 못했으니, 당시 내 생각이 착각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렇게 굳은 마음을 먹고도 하지 못했던 영어 공부를 얼마 전부터 하고 있다. 벌써 100일이 넘었다. ( 박수를 칩시다!) 시작하면서 영어 공부를 하는 이유를 주절주절 늘어놓았었다. 외국어 공부가 노인들 치매예방에 도움이 된다느니 어쨌다느니 하며, 심심풀이 겸 머리가 나빠지는 속도라도 늦출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은미의 말을 보며, 다시금 내가 영어공부를 시작한 이유를 되짚어보았다. 나도 여전히 어떤 가능성과 기회를 기대하고 있나?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게 있다. 예전에 우리 동네 문화관광해설사 교육생 모집 공고에서 ‘영어회화 가능자 우대’라는 글귀를 보았다. 경쟁률이 은근히 높았는데, 왠지 영어를 잘하면 ‘프리패스’ 일 것 같았다. 물론 내가 그 정도 수준이 되려면 상당히 시간이 필요할 테고, 그때쯤이면 나이가 많아 안 될지도 모른다. 게다가 AI덕분에 즉시 동시통역이 가능한 시간이 멀지 않았다. 영어를 잘해서 생기는 기회는 점점 사라지거나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영어 공부를 하는 건가.
지난주에는 병원을 다녀온 후 울적한 마음을 영어공부를 하며 달랬다. “마음이 뒤숭숭하면 수학 문제를 풀면 도움이 돼요”, “집중이 안되면 영어 단어를 외웠어요.” 같은 수능 전국 수석들이나 할 법한 말을 내가 하게 될 줄이야. 핸드폰을 들고 스픽 쌤의 가르침을 배우고 익히고 기억나지 않으면 머리를 벅벅 긁다 보니 어느새 울적한 기운이 사라졌다. 영어로 듣고 말하기는 왜 이렇게 어렵냐고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가라앉았던 기분이 회복되었다. 이 것은 영어공부를 처음 시작하면서 기대하지 않았던 효과이다.
누군가 나에게 왜 뒤늦게 외국어 공부를 하냐고 물으면 이제 이렇게 대답해야겠다. 심심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고, 기억력 감소와 인지 기능 저하 예방에 도움이 되어 좋고, 울적할 때 집중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 좋다. 토익성적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어 좋다.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 영어로 자유롭게 말하게 되면 그것도 좋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