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역꾸역

살고 있습니다

by 송알송알


며칠 전에 내 아이패드가 이상했다. 밤새 충전케이블을 꽂아 두었는데, 충전이 전혀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충전어답터와 케이블에 문제가 생긴 줄 알았다. 충전어답터를 바꿔보고, 다른 케이블을 연결해도 감감하다. 휴대폰 충전은 잘 되는 걸로 보아 충전기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아이패드의 문제인가? 10년쯤 사용했으니, 제품의 노후화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이패드뿐만 아니라, 나도 요즘 충전이 잘 되지 않는다. 젊을 때는 아무리 바쁘고 힘들고 몸이 고돼도 하룻밤 자고 나면 거뜬했는데 말이다. 자고 일어나면 얼굴에 새겨진 베개자국이 금방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지금은 회복이 더디고 더디다. 그래도 그냥저냥 일상을 살아간다. 반드시 해야 하는 공부도 없고, 마감이 정해진 일도 없고, 오늘 무조건 해야 하는 일도 거의 없으니 가능하다.


가끔 집들이, 모임, 여행, 이사, 병원 방문 같은 특별한 일이 생기면 상황이 달라진다. 몇 날며칠을 재충전에 시간과 공을 들여야 아주 천천히 일상을 회복한다. 그야말로 저속충전이고 100% 완충은 이제는 그림의 떡이다. 문제는 충전시간이 점점 더 길어진다는 것이다. 오래된 아이패드처럼 나도 낡아서 그런가?


지난 두 달 동안 일이 많았다. 친구네 집들이, 병원 정기 검진, 세 번의 엄마네 방문, 아이의 이사 (이것도 두 번이다. 자취방에서 집으로, 집에서 기숙사로) , 집수리를 위해 시장조사차 이케아와 한샘매장 방문 그리고 친구들과 만남 등등이다. 이게 뭐 별것 아닌 일로 보일 수 있지만, 시골사람인 나에게는 대단히 큰일이었다. 매번 행정구역의 경계를 넘나들어야 하는 장거리 일정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로 힘들 줄이야. 정말이지 일주일에 2~3번은 너무 힘들더라. 아, 중간에 ‘설’이라는 명절도 있었다.


몸은 한도초과, 머리는 용량초과로 몹시 고된 날을 보냈다. 이토록 고된 여정의 시작이었던 병원 검진 후에는 ‘울적해서 스픽으로 영어공부를 했어’라며 꼴값을 떨었더랬다. 꼴값도 어느 정도 기운이 남아있을 때나 가능하더라. 점점 꼴값도 못 떨고 , 밥만 겨우겨우 해 먹고 지냈다. 책은 당연하고 드라마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급기야 응급실까지 다녀왔다. 의사 말로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니, 그야말로 해프닝이었다. 이것 참, 남사스럽도다.


남편의 손길을 거친 아이패드가 충전이 되기 시작했다. 기계도 주인을 따라가나? 아이패드가 저속 충전을 한다. 충전이 아예 되지 않는 것보다 다행이긴 한데, 이게 무슨 일인가? 이제 곧 기계의 운명을 다한다는 전조증상일까. 새 아이패드로 바꿔야 하나?


다행히 아이패드는 충전은 느리지만 동작에는 큰 문제없다. 덕분에 나노바나나와 함께 4컷 만화를 그렸다. 아이패드를 그냥 조심조심 , 살살 쓰기로 했다. 나도 기운을 회복했고 조심조심 살살 그리고 꾸역꾸역 살아내기로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나이 들어하는 영어 공부가 꽤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