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작가가 좋은 이유

by 송알송알


2007년 매일 아침 그를 만났다. 전기밥솥에 밥을 안치고 일간신문을 펼쳐놓고 그의 글을 읽었다.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신문의 잉크 냄새와 밥이 되어가는 구수한 냄새를 맡으며 <퀴즈쇼>를 읽었다. 금방 다 읽고 난 후 아침 식사 준비를 했다. 아침밥을 먹고 나자마자 다음 아침이 빨리 오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나는 그의 팬이 되었다. 기발하고 참신하며, 세련되고 예리하다. 그의 글을 읽을 때면 늘 드는 생각이다. 물론 가끔씩 괴이하고 난해했다. 2025년, 김영하 작가의 등단 30주년 기념 이벤트를 보며 그가 참 많은 글을 썼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동시에 내가 그의 작품을 그리 많이 읽지 않은 점도 알았다. 이래서야 감히 팬이라 감히 말해도 되나 싶지만, 나는 김영하 작가를 좋아한다.


언제였더라, 10년쯤 전이었을까. 내가 사는 동네에 그가 강연을 하러 왔었다. 강연 주제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2시간 강연을 꽉 채우고 마치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던 그의 모습은 선명하다. 그와 약속된 시간은 2시간뿐이며, 사인회는 사전에 논의되지 않았다고 했다. 강연 기획자와 청중들은 강연 후에 사인과 사진 촬영이 이어질 것이라 예상했을 터다. 사인받을 책을 바리바리 들고 온 청중들의 벙찐 표정이 지금도 기억난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가 좋았다.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이 멋지게 보였기 때문이다.


작년, 어느 작가의 강연에 참석했더니, 1시간 30분 강연 후 30분 동안 사인회를 했다. 평소 책에 작가 사인을 받지 않는 나는, 공지와 달리 강연 시간이 줄어든 것이 마냥 반갑지 않았다. 사인보다 작가의 말을 더 듣는 게 낫다. 하지만 그때의 김영하 작가를 떠올리며 상황을 받아들였다.

“문학은 성공하는 방법은 가르쳐 줄 수 없지만 실패가 그렇게 끔찍하지만은 않다는 것, 때로 위엄 있고 심지어 존엄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그러니 인생의 보험이라 생각하고 소설을 읽어라.”

“문학은 태생적으로 개인주의적이며 우리에게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느끼는 것도 모두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세계입니다.”

김영하 작가의 산문집 <다다다>중에서


나는 소설을 좋아한다. 비문학 알러지가 있나 싶을 정도로 나의 독서는 문학, 그중에서도 소설에 편중되어 있다. 한때는 이런 나의 편식을 걱정하고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더 나은 사람이 되려면 소설보다 철학서, 인문학 책 혹은 자기 계발서를 읽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런 나에게 소설 읽기도 나름 충분하다고 말해 준 사람이 김영하 작가다. 소설 속 인물을 통해서 내가 직접 겪어보지 않은 타인의 다양한 삶을 이해할 수 있고, 그것들은 나의 신념과 태도에 서서히 스며들었다. 그럼에도 소설에 치중된 독서가 왠지 초라하게 느껴졌는데, 김영하 작가 덕분에 떳떳해질 수 있었다. 그러니 그를 좋아하지 않을 방법이 없다. 그래도 균형을 이루기 위해 다양한 독서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2025년은 김영하 작가의 등단 30주년이었다. 단편집, 장편소설 (빛의 제국), 산문집- 이렇게 3권으로 구성된 30주년 기념 도서 세트를 구입해서 천천히 읽고 있다. 지금껏 나는 그의 소설- 그는 정말이지 탁월한 이야기꾼이다-을 주로 읽었지만, 그의 산문이 소설만큼이나 좋다. 비슷한 연배로 동시대를 살아온 공감대 덕분일까. 그의 에세이를 읽는 시간이 참 좋았다.


2007년의 잉크 냄새나던 아침부터 30주년 기념 도서를 읽고 있는 오늘까지, 김영하 작가는 내 독서 인생의 오래된 친구 같다. 완벽한 팬이 아니어도 괜찮다. 그저 그의 글을 읽으며 위안을 얻고, 내 삶의 태도를 조금씩 수정해 나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의 글을 오래오래 읽고 싶다.

김영하 작가 30주면 기념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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