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연애 해설서: 사랑의 생애 관람기

이승우 작가의 <사랑의 생애>를 읽고

by 송알송알


“와~ 진짜 좋겠어요. 고민이 연애라서 좋겠어요. 우리 나이가 하는 고민은요. 진짜 생사 문제예요. 콜레스테롤 수치를 어떻게 낮추지? 지방간 어떻게 할까? 우리가 하는 고민은 이래요. ‘내가 좋아하는 만큼, 저 사람이 날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 ’ 이런 고민 다시 하고 싶어요. “


SNS에서 힙합그룹 에픽하이의 동영상을 우연히 보았다. 그들의 말을 그대로 옮기지는 못했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인터넷이 내 생각을 읽었나 싶을 정도로 때마침 비슷한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 조금 다르다. 나는 연애 고민을 다시 하고 싶지는 않다. 연애 세포가 말라버린 탓일까, 아니면 삶의 우선순위가 바뀐 탓일까. 그도 아니면 연애에 필요한 에너지가 고갈되어서일까?


이승우 작가의 <사랑의 생애>를 읽으며 요즘 유행하는 연애 관찰 예능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나는 솔로>나 <환승연애> 같은 프로그램들 말이다. 패널들이 출연자들의 사소한 몸짓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며 훈수를 두듯, 이 소설 역시 연애의 과정을 집요하게 중계하고 분석한다. 읽다 보면 '이게 소설인가, 사랑에 대한 해설서인가' 싶어 표지를 다시 확인하게 될 정도다.

표지 그림을 좀 더 가렸어야 했나?


작가는 사랑이 사람에게 '덮친다'라고 말한다. 소설의 첫 문장에서 말했듯이 ‘사랑이 사람을 숙주 삼아 그 안에서 자신의 생애를 시작한다’는 관점은 기발하고도 철학적이다. ‘사랑이 두 사람 사이로 들어와 자기 생애를 시작한다. 그 생애가 연애의 기간이다. 어떤 생애는 짧고 어떤 생애는 길다. 어떤 생애는 죽음 후에 부활하고, 어떤 생애는 영원하다.’는 글을 읽으며 소설의 제목을 비로소 이해했다.


한눈에 반하고, 고백하고 차이고, 질투하고, 연인을 위해 노력하고 , 양다리를 걸치고, 이별하고, 다시 만나고 - 등장인물들의 사랑의 생애를 작가는 철학적으로 심리학적으로 예리하게 분석한다. 책은 재미있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고민에 온전히 공감하기는 어려웠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살아보니 그거 다 부질없더라" 하는 마음이 앞선다. 특히 선희와 영석의 재회를 지켜보며 나는 내심 반대했다. "선희 씨, 영석 같은 남자를 만나면 불행해진다고 내가 장담해요!"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작가는 바람둥이가 타인의 고유한 매력을 그 누구보다 잘 알아챈다고 말하는데, 그 대목에선 무릎을 쳤다.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에게 마음이 열리게 마련이다. 바람둥이인 줄 알면서도 사랑하게 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사랑에 관한 주옥같은 문장들이 곳곳에 박혀 있어 지루할 틈을 주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동의어가 반복되는 문장에 주의가 필요하기도 하다.


이 책은 지금 사랑에 푹 빠져 앞뒤 가리지 못하는 청춘들이 읽으면 참 좋겠다. 자신의 사랑을 한 걸음 물러나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물론, 남의 사랑 이야기가 제 사랑보다 뜨거울 리 없는 그들에게 이 냉철한 분석들이 눈에 들어올지는 미지수지만 말이다.


연애보다 건강 검진 결과가 더 떨리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재미있고 의미 있는 책을 읽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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