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책부터 산다

언젠가는 읽으리라

by 송알송알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 기출문제집>, <12주 드로잉 워크숍>, <그림 그리기가 이렇게 쉬울 줄이야>, <손바느질로 옷 짓는 책>, <정원가의 열두 달>, <허브 키우기>, <밭은 땅을 디디고 손은 흙을 만지며>, <가드너 다이어리>, <한자의 뿌리>, <먹이는 간소하게>, <깨봉수학>, <누구나 아는 나만 모르는 제미나이>. 더 많이 있지만 여기까지만 나열해 본다.


한국사를 공부하다가, 그림을 그려보겠다고 끄적거리다가, 느닷없이 바느질을 하겠다고 했다가, 텃밭과 꽃밭에 관심을 보였다가, 한자의 뿌리를 찾아 나섰다가, 간단한 요리에 눈길을 주다가, 수학 공부를 하다가, 인공지능에 흥미를 느낀다.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이 책들에는 무려 두 가지나 되는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 공통점은 한때 내가 흥미를 보였던 분야들이라는 점이다. 나는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일단 책부터 산다. 어느 날 사극을 보다가 내가 우리나라 역사를 너무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국사를 공부해야겠다. 이왕 공부하려면 검정시험을 보는 게 좋지 않을까? 그래야 더 열심히 하겠지?” 그렇게 책을 샀다. 그림, 손바느질, 식물 가꾸기, 한자, 수학, 요리, 인공지능 등등 시시때때로 관심 분야는 달라지지만, 나는 그냥 일단 책부터 장만한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따르는 옛날 사람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요즘 젊은이들은 유튜브에 물어보더라만 말이다.


두 번째 공통점은 이 책들이 아주 매우 엄청 깨끗하다는 점이다. 구입한 지 몇 년이 지난 책들도 방금 산 것만 같다. 이상하게도 주문한 책이 배송되고 나면 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 식는다. 열정이 부글부글 끓어 넘쳐 책을 주문했는데, 배송을 기다리는 사이 이성을 되찾았다고 해야 할까. 돈을 쓰기 전에 정신을 차리면 좋으련만. 어쨌든 책이 있으니 시작은 한다. 하지만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보이지 않는다. 처음에는 재미있고 쉬운데, 갈수록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진도도 잘 나가지 않으니 재미가 없다. '내가 이걸 굳이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내 영역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힘들고 어려워지면 냅다 도망가는 성질머리를 갖고 있다. 그래서 제대로 하는 것은 없고 내 책들은 늘 깨끗하다. 다시는 보지 않을 것 같아 헌책방에 내다 판 책들도 부지기수다.


요즘은 앱으로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영어 책은 따로 사지 않았다. 이미 집에 차고 넘치니까. 나이 들어 뒤늦게 시작한 외국어 공부가 재미있다고 하도 호들갑을 떨었더니, 친구가 '듀오링고'라는 앱에 나를 초대했다. 그렇게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다.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도 모르지만 제법 재미가 있었다. 어순이 우리말과 비슷하고 닮은 단어가 많아서인지 영어보다 실력이 빨리 느는 기분이었다. 금방이라도 일본어로 쏼라쏼라 할 수 있을 것 같아 신이 난 나머지, 이번에도 책을 샀다.


그 책을 책상 위에 펼쳐놓은 지 일주일쯤 지났다. 그런데 벌써 다른 책들과 비슷한 길을 가려는 조짐이 보인다. 히라가나와 가타카나, 발음 법을 읽은 게 전부다. 나름 매일매일 열심히는 한다. (진짜다!) 하지만 방금 공부한 것을 돌아서면 잊고, 어제 공부한 것은 당연하다는 듯 까먹는 일이 반복되니 흥미가 떨어지고 있다. 슬프게도 그렇다. 나는 도대체 왜 이럴까.


그러다 우연히 **‘츤도쿠(積ん読)’**라는 말을 알게 되었다. ‘사놓고 읽지 않은 책들’ 혹은 ‘책을 사서 읽지는 않고 쌓아두는 사람’이라는 뜻이란다. 딱 내 이야기다. 일본어로 “와타시와 츤도쿠데스(나는 츤도쿠입니다)”라고 하면 되나? 말이 안 되나? 어쨌거나 공부 좀 했다고 일본어가 막 튀어나오네 그려. 왠지 모르게 이번에는 다를 것 같다는 기대가 생긴다. 게다가 예전에 사서 쌓아두었던 책 중에서 지금 딱 필요한 책을 발견했다. 책은 사두면 언젠가는 도움이 된다더니, 틀린 말이 아니다. 앞으로도 나는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일단 책부터 살 테다. 뭐 어때?

나는 글을 쓰고 말을 하고 나노바나나는 그림을 그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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