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살 때는 몰랐는데, 시골로 이사 온 후 주변에 새가 참 많다는 걸 실감한다. 난로 연통으로 기어 들어온 녀석부터 작년 봄 처마 밑에 집을 지은 제비, 그리고 이름 모를 수많은 새를 만난다. 사실 '본다'기보다는 그들의 소리를 '듣는' 것이지만, 우리 주변엔 정말 온갖 새들이 살고 있다.
따다다다다, 삐직삐직, 꺄악꺄악, 또로로롱, 자라라라라, 비비비, 째르르, 두두두두, 뿍 뿍 뿍—. 산책길에 들려오는 새들의 합창을 듣고 있노라면 이름이 무엇인지 못내 궁금해진다. 눈을 마주칠 수 있다면 이름이 뭐냐고 묻고 싶을 정도다. 지난가을에는 까치의 '홍시 먹방'을 우연히 보았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재미있던지 숨을 죽인 채 한참을 지켜보기도 했다.
집을 지으며 거실 창을 통유리로 설치했다. 사람 보기 좋자고 만든 유리창에 가끔 새들이 부딪히곤 했다. 잠시 기절했다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날아간 새는 딱 한 마리뿐이었고, 대개는 명을 다했다. 죽은 새를 묻어줄 때마다 놀랍고 안타깝고 미안했다. 결국 서둘러 ‘조류 충돌 방지 스티커’를 유리창에 붙였다. 그 후로는 단 한 번도 새가 부딪히는 일이 없었다. 점들이 촘촘하게 찍힌 유리창이 되었지만, 더 이상 새 무덤을 만들지 않아도 되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이제 새들과 평화롭게 지낼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제법 덩치가 큰 새 한 마리가 뒷마당의 기둥에 부딪혀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다. 투명한 유리창도 아닌 기둥에 부딪히는 모습을 보니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다. "새 맞나? 날개는 장식인가?" 싶었지만, 그 마음도 잠시, 바닥에 쓰러져 버둥거리는 새를 보니 걱정이 앞섰다. 날개가 부러진 건 아닐까, 정신을 차리게 물이라도 뿌려야 하나, 혹시 죽으면 어떡하나, 온갖 생각이 교차했다.
겁이 나서 가까이 가지는 못하고 멀찍이 살펴보니, 이름은 몰라도 예사 새는 아닌 듯했다. 서둘러 시청 야생동물 보호 부서에 구조 요청을 했다. 구조대를 기다리는 동안 배를 보이고 누워 있던 새는 스스로 몸을 뒤집어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있을 뿐, 날아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30분 뒤 도착한 구조사가 다가가자 새는 비틀거리며 어디론가 도망쳐 버렸다.
구조사와 우리 가족이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찾지 못했다. 우리 집 강아지 두 마리까지 수색에 동원했으나 끝내 허사였다. 결국 빈손으로 돌아가는 구조사에게 새 이름을 물으니 '독수리' 같다고 했다. 하지만 인공지능(AI)에 물어보니 천연기념물 '참매'라고 한다. 새를 얼핏 본 구조사보다는 인공지능의 판별이 더 정확한 듯싶다. 특히 배 부분의 흰 바탕에 검은 가로 줄무늬가 있는 것으로 보아 매가 확실해 보였다. 구조사는 그 배의 무늬를 보지 못했다.
날갯짓을 제대로 못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무사히 날아갔을까?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혹시 날지도 못하고 있다가 길고양이에게 해코지를 당하는 건 아닐까? 부디 그런 일 없이 무사히 기운을 차렸기를, 다시 힘차게 하늘을 날고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