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함은 느긋한 시간으로 자라나지
#오늘의단어 #20230513 #유연
“글쓰기는 운동과 같아서 매일 한 문장이라고 쓰는 근육을 기르는 게 중요하답니다. 오늘 떠오른 문장을 기록하고 한 편의 글로 완성해 보세요.”
오늘 아침에 받은 브런치 알림이다. 브런치가 글을 쓰지 않는 작가들에게 보내는 잔소리라고 할 수 있겠다. 2주 동안 새로운 글을 올리지 않으면 날아온다. 나는 이 알림을 툭하면 받는다. 브런치의 말처럼 글쓰기도 근육이 필요한데 나처럼 쓰다말다해서는 근육이 생기기는커녕 근손실만 없어도 다행이다.
나는 글이 아니라 일기를 쓴다고 주구장창 주장한다. 내 일기를 감히 글이라고 이름을 붙이면 잘 쓰고 싶은 욕심에 점점 안 쓰게 될 것 같아 그런다. 그렇다면 일기를 매일매일 쓰면 발전이라는 걸 할 것 같은데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일기는커녕 주기를 썼다가 심하면 월기를 쓴다. 이쯤에서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도 아니고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일기장 검사라는 게 있었다. 숙제를 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던 모범생이었지만 일기는 왜 그렇게 죽어라고 쓰기 싫었는지 번번이 밀린 일기를 하루 저녁에 다 쓰는 신기를 발휘했었다. 한 달 치 방학 일기를 한 번에 다 쓴 적도 있다. 내용은 매일매일이 똑같았다. ‘친구 **랑 놀았는데 참 재미있었다. 또 놀아야지.’ 친구 이름을 바꾸고 놀이 내용만 바꾸면 되니 한 달 치 일기도 뚝딱뚝딱 가능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다를 게 없다. 이러니 글쓰기 근육이 생길 리 만무하다. 생기지도 않는 근육의 손실을 괜히 걱정하고 있는 셈이다.
나는 글쓰기뿐만 아니라 매사가 그렇다.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끝은 미미하였다’라는 말을 나만큼 열심히 실천하고 있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처음에는 의지를 가득 채워 출발한다. 시작하자마자 잘하고 싶다. 걸음마를 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달리지 못해 안달이다. 그 안달은 종내 절망을 가져다주고 나는 포기한다. 요가는 한 시간, 헬스는 일주일, 수영은 한 달, 피아노는 두 달, 영어회화는 세 달 , 그림 그리기는 삼 년… 또 뭐가 있더라. 달인이라고 처음부터 잘했을 리 만무한데 나는 왜 시작하자마자 달인만큼 잘하고 싶어 할까. 잘하지 못하면 재능이 없다는 등, 재미가 없다는 등, 그다지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다는 말로 포장하고 포기할까.
달인이 유연함을 위해 땀 흘린 수많은 시간이 있다는 것을 안다. 달인은 그 긴 시간을 느긋하게 견뎌냈다는 것도 안다. 나는 다 알면서도 왜 못하는 거냐. 참으로 어이없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