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물레야 물레야

제1부. 열여덟, 가을날의 상심

by 윤슬

벗는다. 점바치 석구네가 자기를 벗는다. 자꾸만 목구멍을 배뱅거리며 타는 듯 조이던 소리에 데인 상처를, 상처에서 베어나는 눈물을 수건으로 눌러 닦는다. 굵은 소나무 둥치만 한 허리를 기우뚱거리며 눈물을 닦는다. ‘땅 따그르르르르 ~ ~’ 장구 장단의 끝을 맺는 천문이의 소리에 섞여 소희의 가냘픈 소리가 징 소리에 물려 나온다.


묻는다. 소희는 벗어버리고 싶었던가. 덧입고 싶었던가.

머나먼 세월 저편에서 안갯속을 헤치고 나오는 기억의 꾸리들을 바라본다.

눈을 감는다. 바람이 몰려온다. 구름이 흩어진다. 바람에 쫓기던 구름이 망망한 하늘에 누에가 입에서 뽑아낸 실의 가느다란 얽힘으로 엮어낸 고치의 자궁을 감싼 막처럼 성기게 하늘을 깁는다. 바람이 성을 낸다. 후욱 끼쳐오는 검은 냄새가 성긴 하늘을 휘감는다. 걷어내는 손짓이 사래를 쳐도 성난 바람은 검은 입김을 몰고 다니며 하늘 곳곳에 검은 그림자를 씌운다. 드디어는 검은 그림자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하늘이 손을 놓아버리고, 둑 터진 하늘에선 속절없는 물방울들이 줄기져 내린다. 허공을 가르며 세차게 쏟아지는 물줄기들이 사람의 머리맡으로 내리고, 사람의 정수리를 타고 내린다. 그것은 곧 땅으로 굴러 떨어지고, 땅은 제 몸을 깎아내는 고통에 몸을 둔다. 두 손바닥을 나란히 붙이고 둥그렇게 펴 올리는 자리만큼씩 빗방울은 무리지어 내리고 땅의 가슴패기는 깊은 상처를 입는다. 상처 입은 자리에서 거꾸로 솟는 눈물이 붉게 흐르는 자리에 피어난 꽃은 잎이 진 자리에서 홀로 피었으니 홀로 질 것이다.

하얀 꽃말을 가진 여자 소희는 여자로 피어날 길 없는 밤을 빗소리로 채우며 등잔 앞에 앉아 빙빙 돌린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물레에 감기는 실의 하얀 길이가 소희의 밤을 감는다.


물레야 돌아라 뱅뱅뱅 돌아라

어리렁 서리렁 잘도 돈다

진서방네 못딸애기

시집가기 원하는데

시집가던 삼일만에

집이 절을 하는구나


물레야 돌아라 뱅뱅뱅 돌아라

어리렁 서리렁 잘도 돈다

병이 났네 병이 났네

시살물레 병이 났네

시살물레 병난 데는

뭣이뭣이 약일런고

시살물레 병난 데는

참기름이 약이라네

참기름을 발라논께

팽팽 잘도 도네


누구도 찾아들 리 없는 밤, 깊은 밤, 물레는 돌아간다. 돌자 하고 돌리니 별 수 없이 돌아가지만 하얗게 감기는 소희의 물레에는 깊어가는 여름밤 풀벌레 소리가 이명(耳鳴)처럼 감긴다. 날이 맑은 밤엔 달빛이 수심(愁心)으로 감기고, 뜰아래 쏟아질 듯 맑은 별들은 자잘하게 감긴다. 그러다가 오늘처럼 톰방 톰방 떨어지는 빗방울의 소리가 추녀 허리를 감고 돌아 떨어지는 움푹 파인 자리에서 왕관의 보석처럼 흩뿌려지는 밤에는 끼익 끼익 얼그렁 덜컹 얼그렁 덜컹 뱅글뱅글 돌아간다. 붉은 무릇 고적한 넋을 사정없이 후려치고 가는 빗줄기 너머에서 물레를 돌리는 소희의 하얀 저고리가 젖으니 치마도 하얗게 젖어 들어 간다.


열여덟이었다.

치자물이 살짝 돌아 노랗게 올라오는 천 위로 농익은 껍질이 툭 터지는가 싶더니 열매가 돋아 오른다. 푸른 물 스민 회색빛 가지는 길게 늘어지고, 검은 물 짙게 베인 회색빛 가지는 굵게 마디져 늘어졌다. 통통하게 굵은 바늘귀에 매달린 실들이 가닥가닥 올라서고 내려서며 음영 짙은 잎사귀를 밀어낸다. 참새가 무리 지어 다녀가고 지빠귀가 가지 사이를 톰방거리며 다녔을, 비비새 어미가 먹이를 물고 이곳저곳을 세심하게 살피다가 박차고 올랐을 가지들 사이로 삐죽삐죽 솟아나 우거진 잎사귀들에서 뚝뚝 떨어지는 새콤함이 입 안 가득 고인다.

“오매, 이쁘요오. 겁나게 이쁘요.”

옆에 앉아 하얀 베갯잇에 꽃잎을 수놓고 있던 서운이가 작은 눈을 동그랗게 모으고는 새살궂게 떠들어댄다. 웃는 그 눈빛이 샘물처럼 맑다.

“니가 피운 꽃도 예쁜데, 뭘.”

“하아아, 이쁘요?”

“그래. 하얀 홑청 위에서 그렇게 빨갛게 피어나고, 노랗게도 피어나니까, 앙증맞은 것이 예쁘구나.”

“히이이 히. 근디요, 저는요, 요렇게 가지빛 돋는 게 더 이쁘구만요.”

“그래. 가지빛 꽃도 예쁘다.”

“쫌 있다가는 엄니한티 말히서 베개마구리도 연습해볼랑마요.”

생글거리며 재깔이는 소리가 여름 마당 안에 퍼진다.

“오매, 아씨, 대감마님께서 오시는구만이요.”

새살맞게 재깔이던 서운이가 무춤거리며 댓돌 아래로 내려선다.

“아버님께서…….”

소희는 들고 있던 바늘을 수틀 한쪽 구석에 꽂고서 일어선다.

“그래, 수를 놓고 있었더냐?”

“예, 아버님.”

“앉거라.”

언제나 살갑고 다정하신 어버이시지만 친히 별당에까지 걸음 하시어 딸을 찾는 부친 앞에서 송구함을 느끼는 소희는 한쪽 손바닥을 바닥에 짚으며 고개를 수그린다.

만면에 미소를 띠고 앉아 딸을 바라보는 삼산리 양반 장익태의 시선은 별당의 마루 뒤로 열려진 문틈 안으로 가득 들어오는 백일홍 나무의 붉은 꽃에 가 앉는다. 오라비들과 남동생 사이에 고명으로 넣은 듯 끼어 태어난 딸인지라 그 정이 자별하여 따로이 별채까지 지어 기거하게 해 준 아버지였다. 그 아버지가 오늘은 아내 삼산리댁을 동반하고서 걸음 한 것이다.

“얘야, 내가 복이 많아 너 하나를 딸로 두어 흐뭇하였더니, 이제 너를 보내주어야 할 때가 온 것 같구나.”

“너의 혼처가 정해지고 나니 마음이 강물 일렁이듯 하시는 모양이시구나.”

“…….”

“네 나이 열여덟이니, 늦지는 않았다만 빠르다고도 할 수 없게 되었구나.”

얼굴이 귀밑까지 발그레해지며 고개를 외로 트는 소희의 모습을 보는 삼산리댁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떠오른다.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은 삼산리댁의 내려놓은 무릎 위에서 태극선이 흐뭇한 바람을 일으킨다.

“아마도 네가 들어갈 시집에도 우리 집과 같이 별채가 하나 따로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담장을 사이에 두고 백일홍이 볼 만하다 싶게 피어 있을 것이다.”

“…….”

“너도 짐작하겠지만 저 피향정 가까운 곳에 집을 두고 여름 한 철 낮으로는 백일홍 나무의 붉은 꽃으로 선비의 청빈을 수학하고, 밤으로는 달빛을 받아 하얗게 피어나는 연꽃을 바라보며 탁해진 귀를 씻고 눈을 씻으며 마음을 닦는 선비, 태인(泰仁)의 향반 이명헌 대감의 자재 도영이 네 배필로 정해졌구나.”


한동안 아버지 장익태의 입가에서는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사랑채에는 큰사랑이고 작은사랑이고 소식을 듣고 찾아오는 손님이 끊이지 않아 안주인 삼산리댁의 하루는 분주하기만 하였다. 며늘아기들이 있어 수발을 들고, 하인들이 있어 허드렛일들을 발끝 닳게 해내니, 손님들 대접에 소홀함은 없지만 새새 틈틈 생겨나는 크고 작은 일들로 인하여 허리 펴고 앉았을 새가 많지 않았다.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고명딸 아기를 빠지지 않는 곳에 혼인시킨다 하니 한시름 놓을 수밖에 없고, 사윗감 도영은 인근 가깝고 먼 동리들마다에서 한다 하는 집안들은 저마다 사돈 맺기를 은근히 바라는 수재였으니, 어머니 삼산리댁으로서는 사뭇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자랑하고 싶어 근질거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게 입추가 지나고 삼복더위도 가신 어느 날 태인의 피향정 상연지 · 하연지의 향훈(香薰)에 깊이 물든 사주단자가 도착하였다. 동문수학하던 벗들 중에서도 학문에 대한 이해가 깊고, 세상에 대한 이상도 맞아 둘도 없이 지내오던 두 사람이 친구의 아들을 마음에 올리고, 친구의 영애를 마음에 실어 서로 사돈 맺기를 약조했던 것이 이제 동심결을 맺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직 사주단자가 오는 의례적 행사임에도 혼례를 치르는 날만큼이나 설레고 흥분되는 것이었다.


길한 날이라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바람도 선선하게 불어와 쾌적한데, 아침부터 까치는 고샅을 살피느라 은행나무 사이를 오가며 울어대고 있었다.

사주단자를 가지고 오는 손님들을 위한 음식과 가까이 사는 친지들을 대접하기 위한 음식 냄새가 고샅으로 퍼져나갈 무렵 드디어 태인 쪽에서 사람이 왔다. 곧게 난 길을 쭈욱 따라오다 보면 어느새 당도하게 되는 곳, 정읍천이 흐르는 길목에서 조금 들어간 마을 백일홍 향기 그윽한 집에 사주단자가 도착했다.

주인 장익태와 부인 전주 이 씨가 대청에 화문석을 깔고 앉아 상 위에 정중하게 놓인 사주단자를 받았다. 네 귀퉁이에 금전지를 달고 간지에 근봉(謹封)이라 쓰인 띠를 두른 빛깔 좋은 남빛의 보자기를 펼치자 싸릿가지를 젓가락처럼 모두어 물려 놓은 흰 봉투가 들어 있었다.

좋은 간지 한 폭의 겉에는 ‘사주(四柱)’라는 두 글자가 반듯하게 쓰여 있었다. 아마도 이명헌 영감의 가까운 친지 가운데 부부가 함께 해로하면서 자식도 남부끄럽지 않게 키워낸 어떤 복 많은 사람의 점잖은 손끝에서 풀려나온 글자이리라. 스스로 겸허해지는 마음으로 공손하게 받쳐 들고 펼쳐본 이면(裏面) 제 이첩(二帖) 안에는 도영의 생년월일시가 가지런하게 쓰여 있었다. 한 줄로 삐진 데 없이 정갈하게 쓰인 사주가 장익태의 눈가에 웃음을 머금게 하였다. 그것을 포장하듯 말아 종이봉투에 담고는 그 끝을 풀로 살짝 붙인 후 싸릿가지를 젓가락처럼 모두어 물려 놓은 것이었다.

이제 날렵하게 벋은 싸릿가지의 머리에 얌전하게 묶인 타래실의 동심결은 또 하나의 날짜를 가지고 다홍빛의 보자기에 싸여 도영의 집으로 갈 것이다.

장익태는 사주단자를 가지고 온 사람들에게 술과 안주를 푸짐하게 내주었다. 사랑채 끝 한 방에 상을 맞대어 놓고는 갖가지 전과 적을 내주고, 맛깔스럽게 버무린 색색깔의 나물과 간이 잘 밴 고기도 넉넉하게 주라고 당부했다. 그리고는 작년 만추(晩秋)의 그늘 아래서 빚은 술 한 병을 내어 주기도 했다. 걸어서 가는 걸음이 지칠 때쯤 술 한 잔 하고 가라며 노잣돈 몇 닢을 손에 쥐어 주었다. 모든 것은 주자가례에서 얻어낸 예법에 의한 것이고, 지방이나 집안에 따라 서로 다른 예법에 따른 것이라지만, 어디 그것에만 따른 것이겠는가. 오랜 벗, 동문수학하던 벗의 자재를 사위로 맞는 기쁨과 고명딸을 보내는 아쉬움이 갈마드는 것을 갈무리하려는 아비의 심정이 빚어낸 것이리라.


사나흘의 낮과 밤은 ‘연길(涓吉)’이라는 두 글자 속에서 소희의 가슴을 일렁이게 했다.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는 시간들이었다. 무엇이라 규정할 수 없는 마음속 충동들, 뱉어낼 수 없는 변덕의 언어들을 있는 그대로, 그냥 생겨나는 대로 묶어둘 수밖에 없는, 귓가에서만 익숙하던 낯선 도령의 정혼녀 소희는 먹지 않아도 먹은 것처럼 포만감이 느껴지고 먹었는데도 먹지 않은 것처럼 허한 느낌이 드는 시간들 속에서 불면의 밤을 보냈다.

‘연길’은 사주단자가 오기 전부터 정해져 있었다. 도영의 집에서 의혼(議婚)이 있고 난 뒤 사주단자를 보내기 전 택일을 해둘 것을 귀띔했었다. 그에 따라 아버지 장익태와 삼산리댁 이 씨 부인은 심사숙고하여 곱게 물든 단풍이 온 산을 뒤덮는 만추의 어느 날 은행잎이 노랗게 날리는 푸른 하늘에 햇살 고르게 퍼지는 날을 기약해 두었다. 그것이 이제 사나흘을 두고 지속된 불면의 밤을 뚫는 화살이 되려는 것이다.

아버지 장익태는 인동 장 씨 문중의 한 어른을 청해 택일단자를 쓰게 했다. 알맞게 두껍고 질 좋은 간지 한 폭을 취해 겉봉투에 ‘연길(涓吉)’이란 두 글자를 썼다. 붓을 잡은 노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평상시 두루두루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고, 집안 간의 대소사에 관한 일들을 의논하며 오가던 푸근한 손길들이 오늘은 어쩐지 진중한 가운데서도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면(裏面) 제 이첩(二帖)을 두 줄로 나누어 첫 줄에 ‘전안(奠雁) 모월 모일’이라 쓰고, 둘째 줄은 ‘납폐는 같은 날 먼저 행합니다. 〔納幣 同日 先行〕’라고 썼다.

집안에서 복이 많은 노인이라 하여 늘 존중하며 공경하는 어른이었다. 항렬이나 촌수에 구애됨 없이 연장자로서 어른이고, 평상시 인품의 후덕함이나 두터운 부부금슬과 자손들의 번창에 손실이 없어 가히 집안의 어르신이라는 신(神)의 칭호를 받는 노인이었다. 정읍 들녘의 한 마을 입암골에 사는 노인이라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일가의 정을 나누며 살아오던 면면들이건만 오늘 붓끝이 흔들리는 것은 분명 상서롭지 못한 징조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집안의 좋은 일이다. 내 혈육의 정을 다른 이의 혈육의 정과 맺어 또 하나의 혈육을 빚어내는 까닭에 미세한 것들은 찰나의 촉수에 맺혀 햇빛에 닿은 이슬처럼 스며지게 하는 것이 덕(德)인 것이다.

사주단자보다 먼저 쓰여진 택일단자는 사나흘을 묵은 아침 도영의 집으로 갔다. 사주단자를 감싸고 온 진한 남색의 보자기가 이번에는 소희네 택일단자를 감싸고 다홍빛으로 되짚어갔다. 지극히 삼가는 마음과 행동이 혹시라도 모를 결례를 범하지 않으려 조아리고 조아리는 속에서도 마당 가득 퍼지는 웃음소리……. 그러나 열여덟의 가을, 그 깊은 가을날의 상심, 그 기억의 꾸리는 뱅글뱅글 돌아가는 물레 소리를 삼키는 열아홉 여름밤 빗속에서 가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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