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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정 Feb 15. 2023

1화. 환생의 행운 찾아가는 길에 개미를 찍어라

제3부. 기다리는 여심, 환생

   되야를 오소사 되야를 오소사 환생하야서 되야를 오소사

   사람이 되야서 오실려거든 성현군자나 되야를 오소사

   남자가 되야서 오실려거든 황후장삼이나 되야를 오시고

   여자가 되야서 오실려거든 황후부인이나 되야를 오소사  

   

  돌아앉은 소희의 모습이 시리게 서럽다. 백동비녀는 전구의 빛에 감겨서 차갑게 물들고 가슴을 꽉 동여맨 치마 말기의 주름은 저고리 도련 밑에서 줄기 져 내린다. 하얀 물빛이 소희를 감싸고도는 밤, 한 가닥의 실이 뽑아져 나오며 감긴다. 

  구조상 받고 신조상 받은 음식상 아래로 놓여 있던 노적가리 수북하던 쌀은 며느리에게 가고 그 자리에 시루 하나가 놓여 있다. 버리덕이 공주 오구시황님의 일곱째 따님으로 태어나 불문곡직 버려진 설움에 구멍 난 가슴, 다만 왕자가 아닌 공주라는 이유로 내다 버리라는 지엄하신 명(命)이 젖어든 시루, 소희는 그것을 마주하고 앉아 징을 두드린다. 동지섣달 눈밭 얼음 언 곳에 삼베옷 입혀 버린 아기공주, 오뉴월 찌는 더위에 동의(冬衣) 털옷을 입고 양지 뜨거운 햇발 아래 버려진 아기공주, 그 버리덕이의 공덕이 잡아당겨진다. 

  무엇하러 기원은 하였던가. 옥황상제께서 내리신 연꽃 한 송이 안고 내려온 천상선녀, 그 기품은 출천지 효녀, 하늘에서 내려온 한 마리의 학이 동지섣달 추운 날에 한 죽지 땅에 깔고 한 죽지로 옹위하여 보살피지 않았다면 죽어 없어졌을 생명이, 오뉴월 한더위에 계수나무 그늘 아래 한 죽지를 부채 삼아 구원하지 않았더라면 죽어 없어졌을 생명이 무엇하러 오구시루 하나를 전장받았더란 말인가. 지옥 열 곳을 떠돌고도 버림받은 영혼들을 구원하겠다고 시루를 청했던 버리덕이 공주의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의 깊이를 삼천갑자 동방삭의 명줄로 석숭의 복을 빌어 줄로 잡아당기며 길어 올리는 정읍네 소희의 소리가 밤하늘을 울린다. 


  되야를 오소사 되야를 오소사 

  환생하야서 되야를 오소사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새가 되야서 오실랴거든 말 잘하는 앵무새나 

  춤 잘 추는 학두루미나 되야를 오소사

  개가 되야서 오실려거든 청삽살이 홍삽살이도 내야 좋다마는 

  해도 물고 달도 물은 원앙개로나 되야를 오소사

  꽃이 되야서 오실랴거든 환생초로나 되야를 오소사

  말이 되야서 오실랴거든 백마 흑마로 되야를 오시고

  소가 되야서 오실랴거든 황소로나 되야를 오시고

  돌이 되야 오시려거든 망부석이나 되야를 오소사

  나무가 되야 오실랴거든 장장목이나 되야를 오소서


  신이로구나 어허어 어허어어 허어야 ~~~

  에헤 에헤 허어어어어야 신이여 신이오~~    

 

  엎어놓은 시루 위에 시룻번을 붙였다. 잔치라도 있으면 떡쌀을 앉히고 김이 새어나가지 않게 둘러막던 시룻번을 종이로 붙이고 명주실을 둘러놓았다. 그 가운데 빈자리에는 쌀 담은 하얀 그릇에 초를 꽂아 밝히고는 멀찍이 앉아 징채의 손잡이에 실을 돌려 두드린다. 한 손으로는 실을 감는다. 두드릴 때마다 당겨져 나오는 실이 하얗게 감긴다. 누에의 집처럼 둥글게 말린다.

  직녀의 하루, 멀고 먼 길,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실, 씨실. 직녀의 손에 이끌려 갈지자걸음을 걸으며 감긴 실은 북을 타고 날실의 강을 건널 것이다. 바디와 잉앗대 건너 날실의 틈으로 들어간 비경이가 열어놓은 길을 따라오고 가는 실, 직녀의 끌신을 따라 풀리고 감기는 날실을 감싸며 한 필의 명주를 만들었을 씨실이 지금 소희의 손에 이끌려오고 있다. 버리덕이 공주의 시루 위에서 망자들의 환생의 줄로, 후손들의 명줄과 복줄로 당겨지면서 감기고 있다. 학두루미가 되어 오든 원앙개가 되어 오든 망부석으로는 되지 말아야 할 것인데, 그 환생초의 공덕도 소용에 닿지 않을 망부석은 어찌 염원하는가. 한 자리에 붙박여 걸을 수도 없으니 뛸 수도 없는, 결단코 소멸이 없는 망부석을 부르는 소희의 음성이 삼천갑자 동방삭의 명으로 감기고 있다. 한 번 떠난 사람 다시 돌아오지 않을 길, 기다림은 미움이 되고 그리움은 병이 되어버린 착(着), 애증(愛憎)의 녹(綠)은 씻겨나갈 줄 모르는데, 백 년이고 천년이고 한 곳에 머물러 닳아질 수 없는 삶은……. 벌이로구나……. 미리내 넓은 강에도 까마귀 몰려와 까치의 어깨를 붙잡고 다리를 놓아 통울음 울게 하는데……. 소희 사는 집에는 다리가 없어 오지 못하는가. 열아홉, 그 여름, 누에의 몸은 길 없는 강에 다리를 놓았다.     


  기와지붕 처마 밑을 사정없이 밀치고 들어오는 아침 해가 신발을 신고 일어서는 소희의 눈동자를 정통으로 쏘아본다. 순간 멈칫하는 소희의 눈에 검은 상이 맺힌다. 검은 상은 다시 수십 가닥의 햇물로 퍼진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무(無)의 세계, 공(空)의 세계, 그 광활한 세계에서 소희는 막막함을 느낀다. 애초부터 아무것도 아닌 것을 그 무엇이라도 되는 것처럼 분별하려 애쓰고, 본래부터 내 것이 아닌 것을 소유하려 했던 지난날들에 짓눌려온 생애가 공허에 떠밀려 주저앉는다.

  “아씨마님, 어찌 그런대요? 어지러우신가비요?”

  비경이를 마당 가운데에 놓던 서운이가 깜짝 놀라 뛰어온다. 

  “아니, 괜찮다. 어른들 들으실라.”

  서운이의 놀라는 소리가 거슬린다. 아주 사소한 소란일망정 중문 너머 큰방에 닿는 것이 면구스럽다. 자식 잃고 시시때때로 슬픈 눈물을 짓는 시어머니 최 씨의 가슴이 일렁이게 하고 싶지 않다. 너무도 가까운 곳에 너무도 멀리 있는 그림자 같은 사람의 일상이 눈에 띄는 것은 참으로 민망할 일이다. 

  때때로 시어머니 최 씨는 반닫이 깊은 곳에서 명주베 보자기를 꺼내놓고는 한참이나 손으로 쓸어보며 눈물지었다. 자식이 생전에 입었던 옷을 싸놓은 보퉁이의 매듭을 풀지도 못한 채 흐느끼는 어미의 아픔을 누가 무엇으로 매만져주랴. 그저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눈길을 아래로 떨구고 앉은 청상의 며느리는 숨 쉬는 일상이 안타깝고 죄스러울 뿐. 

  줄지어 얹은 기왓장 가지런한 담장을 타고 올라가는 호박잎들이 푸르게 무성한 곳에 부지런한 아침이 햇살을 뿌린다. 누렇게 뜬 잎사귀들은 오그라지며 담장 밑으로 처지고 듬성듬성 푸른 잎들은 애매한 곳에 들떠서 데워진다. 다만 어리고 푸른 놈들이 담장 위까지 올라가 사람들 오가는 길 위를 할끗거리는 중간에 노랗게 피어 돌돌 말린 꽃만이 촉촉하게 젖어 있다. 넓은 잎사귀 틈에 숨어서 자라던 기왓골 애호박 둥근 놈은 어제 새참 무렵 복흥댁의 억센 손아귀에 붙잡혀간 뒤로 솔잎 몇 줄기와 물오른 쑥갓 몇 줄기, 탱탱해진 고추 사이에 처박혀 노릇노릇하게 지져지고 말았다. 심상찮게 오가는 젓가락에 붙잡혀 깨소금 툽툽하게 몰아넣고 통깨 푸지게 넣어 바특해진 간장 종지 안에서 뒤채다가는 서운이년 입속으로 들어가고, 소희 입속으로 들어가고, 복흥댁 입 안으로 들어가 오물오물 씹히고 말았다. 비도 오지 않는 맑은 대낮 느닷없는 봉변이 아직도 서러운데 마당 이 끝에 들말을 놓고 저 끝에 끄싱개를 놓으며 중간에 비경이를 놓는 여자들의 분주한 발걸음을 꼭지 떼인 상처받은 자리만이 눈을 흘긴다.  

  서툰 손들이 마주 앉아 촘촘한 바디살 사이로 실을 밀어 넣고 뽑아내어 천조가리로 묶던 시간들이 참으로 더디게 흘러갔다. 마당을 둘러 서 있는 커다란 나무들도 바람 한 점 일으키지 않는 무더운 여름날 여자들의 등에는 땀이 차고 굽어지는 몸살들 사이에도 땀이 엉겨 들었다. 깨알만 한 크기로 돋아나 따갑게 쏘아대던 것들이 손마디 끝에 닿으면서 좁쌀만 한 크기로 도드라졌다. 따끔따끔 쏘아대는 그 자리에 붉은 멍울이 지는 동안에도 세 여자의 어제는 시나브로 흘러서 가고……. 

  고무대 서 있던 자리에는 들말이 앉았다. 제비꼬리처럼 좌우로 갈라진 디딜방아의 모양새다. 넓게 벌리고 앉은 두 다리의 앞머리에 굵직한 기둥이 서 있고. 두 개의 다리를 싸잡은 몸체 위에는 너부데데한 돌이 묵직하게 눌러앉아 있다. 잘 깎아 놓은 실패 모양의 도투마리가 올려지고 내려앉는 동안 그 무게를 견뎌주어야 한다. 들말에 앉은 복흥댁은 두 팔을 손잡이 위에 올려놓고 소희와 서운이의 손놀림을 지켜본다. 바디 끝에 참톱대를 끼우고 그 참톱대를 도투마리에 묶어 날실을 고정하는 동안 마당 가득히 퍼지는 햇물을 바라본다. 노랗게 우러나던 물이 하얗게 퍼지는 마당에서 나뭇가지 사이를 오가는 새들의 분주한 움직임을 바라본다. 푸드득 날개를 치며 날아가서는 저희들끼리 짹짹이고, 이렇게 저렇게 콩콩거리다가 잽싸게 마당으로 내려앉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입아귀가 올라가게 웃음 짓는다. 작은 몸들이 통통한 대가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먹이를 쪼는 모양이 귀엽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하다. 그러다가 문득 그것들에게 날개가 없다면 분명 쪼르르 달려가서 몸을 숨기고 앉아 사방을 살피는 쥐의 모양과 흡사하다고 생각을 한다. 무심결에 눈을 들어 허공을 바라보다가 풀숲에서 먹이를 찾으며 걸어 다니던 모양을 쥐가 서성이는 것으로 착각하여 비명을 질렀던 날이 생각난다. 얼마나 소스라치게 놀랐었던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확인하려 눈에 힘을 주어 살피면서도 놀란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던 날들이 떠올라 피식 웃다가 한숨을 쉬고 만다. 새청맞게 악을 써봐야 달려와서 무슨 일이냐고 둘러봐 줄 사람이 없는 것이다. 

  남몰래 씁쓸한 아침, 서운이가 실사리를 풀며 가는 길을 본다. 열 자의 길이로 네 번씩 열다섯 번을 오고 간 실이다. 복흥댁의 손에서 손으로 옮아가며 사슬처럼 엮어진 실을 소쿠리에 담아 일어서던 서운이의 다리가 순간 휘청한다. 바디 끝 참톱대를 도투마리에 걸어 묶느라 쭈그리고 앉았다가 벌떡 일어서려다 보니 미처 오금이 다 펴지지 않은 탓이다. 허리를 쭈욱 펴고 소쿠리에 담긴 실사리를 풀어가며 걸어서 중간쇠가 서 있던 자리쯤으로 간다. 제 손으로 돌덩이를 들고 쿵쿵 때려 박았던 중간쇠의 표식이 둥그렇게 남아 있는 자리에 돌아앉은 끄싱개 기둥에 실뭉치를 단단하게 매듭지어 묶는다. 제비꼬리를 닮은 두 개의 다리는 바깥쪽으로 두고 다리를 모아 잡은 몸체를 앞으로 둔 크싱개 위에도 묵직한 돌덩어리들이 삼단으로 포개진 채 앉아 있다. 

  참으로 고된 하루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저희 아씨의 현기증이 일던 마루로 달려가느라 팽개쳐 두었던 삼각대 모양의 비경이를 열자의 중간쯤에 대충 놓는다. 풀칠을 하고 도투마리에 말리는 과정에서 널어진 실이 땅에 닿는 것을 막으려는 것인데, 강물 중간중간에 아무렇지도 않게 던져놓은 징검다리 같기도 하고, 불쑥 솟아오른 바윗등 같기도 하다. 

  비경이의 등마루를 건너간 실 줄기는 마당을 가로질러 길게 펴지고 세 여자는 들말의 앞머리에 쭈그리고 앉는다. 내리쬐는 여름날의 햇물을 감당키 어려운 까만 머리에 수건을 둘러쓴 여자들의 손이 바디 끝에서 풀려나온 실들을 가지런하게 고른다. 그리고는 알맞은 크기의 간짓대 네 개를 실과 실 사이에 끼워 넣는다. 꼬무락꼬무락 손가락들을 분주히 움직이며 한 뼘 정도의 거리를 두고 가로지른 간짓대 두 개의 구멍에 끈을 넣어 엮는다. 풀칠한 날실과 날실이 서로 들러붙지 않게 사침대를 넣고는 바디틀 바깥쪽에 있는 간짓대 두 개를 빼낸다. 도투마리와 바디틀 그리고 사침대와 간짓대가 적당한 거리에서 탄력을 갖게 하고는 열다섯 개의 천조가리를 참톱대에서 풀고 간짓대 사이에서 풀어준다. 꽉 동여매고 있던 숨통이 확 트이는 아침 여자들의 숨소리도 마당으로 퍼진다. 후우우 웅크리고 있던 가슴들이 펴지고 말려 있던 허리가 쭉 펴진다. 

  “질부, 풀을 좀 섞어야 겄네. 콩즙 끓인 놈에다가 쌀즙 끓인 년을 쬐깨씩만 섞으소이.”

  “예……? 고모님, 쬐깨만이라고 하시면…… 얼마 정도를 넣을까요?”

  “으이, 대접으로 세 번이나 될락말락하게 섞으소.”

  쌀즙 담은 자배기를 들어 가늠해 가며 콩즙에 섞는다. 물에 섞여 내려오는 덩어리들이 풍덩풍덩 빠진다. 눈가로 튀어 오른 물을 소매 끝으로 닦고는 손을 넣어 조물조물 풀어놓는다. 차가우면서 물컹물컹한 덩어리들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며 미끈거린다. 귀얄을 첨벙 적신다. 속새풀뿌리를 나팔 모양으로 퍼지게 하고 소나무 뿌리껍질로 빈틈없이 둘러 묶은 귀얄이 자배기 속 풀물에 들어가 자맥질을 한다. 

  “그렇게 푹 넣어갖고 적시면 너무 되직해서 안 될 것인디이. 살짝살짝 적셔야 할 것인디이.”

  묽은 덩어리들이 군데군데 묻은 풀을 자배기 전두리에 툭툭 치며 털어내는 소희를 보며 말하는 복흥댁의 입가가 살짝 올라간다. 콧마루에 주름이 잡히고 눈을 흘기는 모습이 잘못을 나무라면서도 싫지 않은 모양이다. 정갈한 성품에 말이 없는 질부가 나이는 어려도 어딘지 대적하기 어려운 면이 있어 때때로 조심스러웠는데 베매기 하는 서투른 모양이 어딘지 정 있고 살갑게 느껴진다. 

  “긍께, 세상에 쉬운 것이 하나도 없네. 매운 시집살이 살면서 시어미 지청구 안 들을라고 허리 한 번 못 펴고 하루를 지내도 까칠한 숨소리는 불 끄고 누운 아랫목 이부자리까지 기어들어오고, 손아래 시누이년 시집도 안 간 것은 새침하게 눈을 뜨고 할깃거리며 종조리새 열씨 까듯이 쫑알쫑알 꼬아 바치고 …… 어디 그뿐인가? 전답 마지기 문서 한 장이라도 덜 가져오는가 싶은 마음 배꼽 밑에 사려 넣고는 중간중간 친정집 곳간 밑자리까지 들추어보는 시아비는 호랑새 아니라던가. 앞밭에는 당초 심고 뒷밭에는 고추 심어 시집살이 개집살이는 고추당초보다 더 맵다고 불러대드마는 내 인생이나 자네 인생이나 한겨울 바람 맞은 통무실세.”

  “마님, 말씀도 참 재미나게 잘 허시는디요, 바람 든 통무시는 쫌 너무 했구만이라우. 우리 아씨마님이 아직 저렇게나 젊은디 어디가 바람이 들었당가요?”

  “아이구 요년아, 겨울 무시 젊다고 바람 안 들고 통무시 늙었다고 바람든다냐? 아무리 땅속 짚은 곳에 지푸라기 이엉꼬챙이에 엮어 덮어놓아도 뼛속까지 파고드는 바람은 어쩔 수 없는 거여어. 푸르딩딩 고실고실헌 대가리 싹둑 잘라내고 한 마디 잘라내면 물은 어디로 싹 다 빠져버리고 얼기설기 푹 퍼진 살들은 매가리 없이 쩍쩍 갈라져 있는디이, 지아무리 잘게 썰어 쇠고기 다져넣고 끓여봐라. 맛탱가리라고는 하나도 없는디, 쓸디 있다냐? 그냥 두엄자리 너매 어디쯤에나 던져두고 말 것이지. 거그서 싹 난다고 꽃 핀다고 새 무시 될 것이냐?”

  “마님은 다 좋은디요, 가끔씩 웃자고 허시는 말씀도 너무 쓰리게 하시는 재주가 있구만요. 우리 아씨 눈물 나겄구만요.”

  “바람 든 무시는 뭐 바람이 들고 싶어 들었다냐? 쩟, 그렇더라는 것이지.”

  복흥댁은 웃자고 한 말이 사생결단하자고 덤벼든 것처럼 후볐다는 생각이 들어 무르춤해진다.

  “질부, 사실은 실을 뽑고 베를 짜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이 베매기 하는 것이라네. 명주 지아무리 고운 베라도 이 쌀풀 입히는 것을 잘 못해 놓으면 몇 필을 짜 놓아도 좋은 베로 쳐주지 않네. 그렁께 신경을 써야는디이, 풀이 지나치게 많이 묻거나 빽빽하면 날실이 딱딱해지고오, 너무 묽거나 칠이 덜 되면 실이 힘이 없어서 좋은 베를 짤 수가 없다네. 긍께 이리 실컷 공들여서 베를 짰는디, 너무 뻣뻣허거나 너무 힘이 없어서 흐물흐물 늘어지면 모든 게 허사가 아닌가? 그냥저냥 만들어서 입으면 되겄지만 아무리 폼을 내고 째를 낼라도 멋이 안 사는디, 공력은 들이서 뭣허겄는가? 자네 시어머님 그 짯짯한 성질에 보나마나 들추어보지도 않고는 그냥 마당 밖으로 팽개칠 것이네. 더구나 도영이 영전(靈前)에 올릴 것이라는데 말해 무엇 하겠나?”

  “예, 고모님. 처음 하는 일이 영 서툴러서 면구스럽습니다.”

  “면구스러울 것까지야 뭐 있겠는가? 자네 공력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이 일이 꼭 필요한 일인가 싶을 때가 한 번씩 있어 그러네. 내가 고모라도 시(媤)자가 들어가는 고모라 자네는 멀게 느껴질 것이지만 나도 한편으로 생각하면 사별을 하고 만 여인네고, 산다는 것이 별반 다를 것 없지 않은가? 아무리 다를 것 같어도 오십 보 백 보네.”

  말의 끝이 아래로 처진다. 친정집으로 들어와 귀퉁이 한 방에 눌러앉아 눈칫밥을 먹는 세월이 편할 리 없는 것이다. 그 삶이 오늘 마당을 가로질러 펼쳐진 실〔絲〕강을 한 구비 돌아 한 고비씩 감아 넘어갈 것이다. 도투마리 양 날개를 붙잡고 들어 올려 한 번을 감고 들말에 내 꽂는 하루가 뭉툭해진 허리 동강나게 돌아갈 것이다. 

  소희와 서운이가 마주 앉아 각자의 귀얄을 들고서 처억척 풀을 펴 바른다. 적당히 머금은 솔을 좌우로 칠해 내리고 세 묶음 네 묶음씩 손에 잡히는 대로 움켜쥐고서 쓸어내린다. 풀이 잘 먹도록 손으로 주무르고 골고루 퍼지도록 솔로 문지르는 동작을 열 번 정도를 반복적으로 하는데, 보드랍기 이루 말할 수 없는 명주비단실이라지만 어찌 이물감이 없겠는가. 끈적이는 풀물이 손에 묻고 꾸들꾸들 말라가는 시간의 연속이 어린 청상의 손바닥을 멍들게 한다. 좌우로 오고 가는 동안 풀 먹은 실은 열에 들뜨고 오가는 손길에 식어간다. 그렇게 풀 먹인 부분의 실이 마르면 복흥댁은 일어나 허리를 반으로 접고 도투마리의 양 날개를 들어 올린다. 그리고는 한 바퀴를 돌려 들말의 기둥에 세워놓으면 서운이는 도투마리와 실 사이에 판자형 목대비를 세우고 살짝 들린 공간에 뱃댕이를 끼워 넣는다. 복흥댁의 억센 손이 목대비를 끌어당겨 착 감기게 하고 뱃댕이가 꼭 맞게 들어가도록 밀어 넣는다. 도투마리의 실 감기는 면적과 같은 크기의 목대비는 두꺼운 종이에 한지를 말아 만든 것인데, 얇게 저민 대를 한지로 감싼 뱃댕이를 꼭 끌어안고서 한 바퀴를 돌아가고 두 바퀴를 돌아서 감긴다. 뱃댕이는 목대비의 품에 안겨서 풀칠된 날실이 서로 엉겨 붙지 않도록 해주고, 도투마리에 감길 실의 간격과 탄력이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신경 쓰는 동안 겁먹은 얼굴을 목대비의 가슴에 묻는다. 중간쇠의 위치에서 삼단으로 쌓인 묵직한 돌을 무릎에 얹고 적당한 탄력을 유지하며 벌 받는 자세로 끌려가는 끄싱개는 세 여자의 고개를 바라본다. 노래 없이는 넘어갈 수 없는 고개, 눈물 없이는 넘어갈 수 없는 고개를 향해 벌 받는 자세로 끌려서 간다. 

  볕이 잘 드는 토방 위 한 곳에서는 고양이 한 마리가 쭈그리고 앉아 잠을 청한다. 흰 바탕에 노랑 털이 군데군데 박힌 놈이 한 번씩 고개를 들고는 앞발로 얼굴을 문댄다. 제 주둥이로 앞발을 가져가 침을 묻히고는 얼굴을 쓱쓱 문지르며 게으른 세수를 한다. 약간 몸을 틀어 올려 마당을 바라보고는 노란 호박구슬 닮은 눈동자에 힘을 주다가 그것도 귀찮다는 듯이 스르르 감더니 축 늘어진다. 네 개의 다리 사이로 늘어진 배가 숨을 쉴 때마다 오르락내리락하고 그르릉 그르릉 거리는 소리가 멀리까지 들려오는 듯하다.

  일흔 번에서 여든 번을 도투마리에 감기는 날실, 서른다섯 번에서 마흔 번을 돌아가는 도투마리, 일흔 개에서 여든 개의 목대비와 뱃댕이의 몸뚱이들을 감싸 안고 돌리는 여자, 복흥댁의 여섯 시간은 열 자의 길목에서 행운을 얻는다. 고무대에서 중간쇠를 돌아 개쇠와 참쇠 막쇠에 걸리던 열 자의 길에서 새까만 숯을 손끝에 묻혀 개미를 찍던 자리에 지푸라기 몇 개를 넣고는 개미집을 넣었다 말한다. 베틀에서 베를 짤 때 중간인 열 자를 짰다는 표시 행운, 한 필의 여정이 끝나는 길에서 가위로 잘린 실은 바디틀에서 두어 자 남짓 떨어진 곳까지 끌려온 끄싱개의 기둥에 걸린 부테와 하나가 된다. 부테는 개톱대를 감고, 끊어낸 열다섯 개의 실은 개톱대에서 다시 열다섯 개의 천조가리에 묶인다. 세 여자의 하루가 흘러가는 동안 도투마리와 끄싱개, 비경이의 밀고 당기고 조이는 시간도 흘러서 간다. 쪼아 먹힌 직녀의 베매기 하루는 버리덕이 공주의 시루에서 당겨지는 환생의 행운을 찾아 길 없는 강에 길을 만들고 그 길 따라올 도영을 부른다. 


*대문사진: 김홍도 <길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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