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정 Feb 23. 2023

4화. 장만상이 기가 막혀

제3부. 기다리는 여심, 환생

  “자는가?”

  불 꺼진 어두운 방 안에서 입은 옷 대충 벗어놓고 누워 부스럭거리던 상쇠영감 홍술이 묻는다.

  “아니여라. 뭐 필요하신 거라도 있는가라우?”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잠을 잊는가, 일부러 한쪽 팔을 눈가에 올려 누르고는 잠을 청해 보지만 좀처럼 잠이 들지 않는다. 

  “아니, 뭐 필요한 것은 없는디, 으째 잠이 통 오지 않는구만.”

  “사실은 저도 잠이 오지 않아 그냥 누워만 있구만이라.”

  “희수, 자네 참말로 잘하더구만. 으째 동네서 연습을 할 때보다 더 잘 헝께 영 딴 사람 보능 것 같더만. 아주 신명이 올라부렀어.”

  “아직도 부족한 디가 많은디 영감께서 그리 말씀을 해 주싱께 챙피헌 마음이 드는구만이라.”

  왁자하던 선착장 주막에 들었던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집으로 돌아가고 몇 남지 않은 사람들도 둘씩 셋씩 무리 지어 들어간 방에서 깊은 잠에 빠져든 밤이다. 옆방에서 잠든 치들의 코 고는 소리가 벽을 타고 들어온다. 그런데도 누군가 상쇠영감의 말을 엿듣고는 칭찬을 낼름낼름 잘도 받아넘기는구나 쥐어박기라도 할 것 같은 생각이 일며 얼굴이 붉어진다. 

  “아니여. 잘 힜어. 참말로 잘 힜어…….”

  “고맙구만이라우.”

  “희수야, 근디, 근디 말이다아……, 너그 아부지는 장구를 참 잘 쳤다. 열채고 궁채고 잡었다허면 그 솜씨를 따러갈 사램이 없었다. 니가 판에서 버꾸 치며 노는 것을 봉께 어쩐지 너그 아부지 생각이 자꾸 나는디, 눈물이 나는 것이 참말로 쫌 그렇드라.”

  목이 멘다. 순간 피어올랐다 순간 사라지고, 이것저것 불쑥 일어나 앞도 뒤도 없이 뒤엉키고 마는 생각 부스러기들로 인해 몸은 피곤한데도 정신은 도리어 말짱해지는 까만 밤에 느닷없이 나오는 아버지 이야기에 목이 메어 온다. 

  “희수야, 우리덜이 매양 정월이든 언지든 치고 노는 매굿이라는 것이 사실은 액막이다. 뭐 모 심고 보리 심는 논 가운데 들어가서 방갓 쓰고 노는 굿이야 들노래 흥겨운 가락이겄지만, 그렇다고 삐잉 둘러봐도 맨 바다뿐인 섬마을에서 농사라고 히봤자. 별 것 없는 것이고……. 실상은 일 년 열두 달 아무 탈 없이 잘 살아보자고 허는 굿이제 별 것 아니다. 쩌그 임실 강진 사람들은 니 동네 내 동네 헐 것도 없이 순창허고 어깨 맞대고 상께 첩첩이 산중이라 배고픈 시정이 곤란헌 때도 많던가비라 걸궁도 치고 그런다등만, 그런다고 히도 그짝 사람덜은 땅이 넓응께 액막이보다는 두레농악에 심을 쓰능가비더라. 긍께로 굿가락이 심찬 것이 빠르게 몰아치등마이. 근디, 쩌그 정읍이나 부안 사람들은 잔가락을 많이 쓰더라. 어찌 그럴거나? 거리가 좀 떨어져 있긴 혀도 다 같은 북돈디 말이여, 가락이 그렇게도 다를 수도 있당가이, 솔찮이 달부던디이…….”

  “예. 가락도 많이 다르고 노는 것도 많이 다르더구만요. 근디, 순창허고 임실은 산세가 험허고 골짜기도 짚은디 거그서 거그라 어깨를 맞대고 있는 폭잉께 사는 것이 별반 다르지 않은데, 정읍허고 부안은 칠보 그 높은 산을 건너서 태인을 거쳐 강께 거리도 멀고 사는 것도 완전히 다릉가벼라. 글고 사람들한테 들응께 정읍하고 부안은 들판이 엄청나게 넓다고 허등마요. 고부 정읍, 부안 김제는 가도 가도 들이 끝이 없이 이어져 있다능구만요. 김제 같은 디는 산이 없단디롸우……. 글다 봉께 농사지어 가을이면 쌀이고 보리고 넘쳐나고 콩이고 밀이고 넘쳐낭께 농악도 한 번 놀면 푸지게 논다능구만요. 그것도 집안마다 살림은 다르겄지만은 두레 농악이 겁나게 크게 벌어징게 가락도 잔가락이 많이 들어가고, 노는 것도 멋이 들어 동작들이 겁나게 이쁘고 화려하다고들 허등마요.”

  “그려. 살림살이가 좋으면 당연히 풍류 잡아가며 놀겄지.”

  누운 채로 한숨을 쉰다.

  “언지라도 한 번 세상구경 나가봐야 쓸랑갑다. 우물 안에 사는 개굴치도 아닌디 말이여 섬구석에 쳐박혀 상께 시상을 알어야지 말이다……. 그건 그렇고, 희수야, 요즘 니 엄니는 좀 어떠시냐? 이런 사람 보기에는 웬만허신 것 같은디, 사람들 말은 여러 갈래던디 참말로 그러냐?”

  “예. 예전과는 다르게 총기도 많이 떨어지신 거 맹이고, 늦게 온다 일찍 온다 성화가 더 불 같아지셨구만이라우.”

  한숨을 쉰다. 낮게 눌러 쉬는 숨이라도 둘밖에 없는 조그만 방 안에 빠져나갈 틈이 없으니, 그것이 서로의 가슴을 조이는 숨이 되어 무겁게 내려앉는다.

  “그리야.”

  “…….”

  “희수야, 그 해에도 우리는 액막이를 심허게 했이야. 그 때는 먼 일인가는 모르겄는디, 자꼬 사람들 마음이 어딘지 모르게 불안허고, 톡별나게 죄진 것도 없는디 자꼬 뒤가 켕기고 말이여, 참말로 그런 해는 건성으로 살어서는 큰 탈이 날팅게 싶어 다들 조심해야 된다고 말히쌈성 조심조심 살었이야. 당산 들어 제 지내고 내려와 집집마다 들어가서 나쁜 기운 씻어내고 좋은 기운 들일라고 돈도 술도 내고 떡도 내고 험성 다들 마음을 모으니라고 마음속에 땀을 쟁있어야. 땀이라는 것이 정성잉께 풀떡풀떡 차곡차곡 쌓아두고 함부로 내뿜지 않았어야. 샘굿 헐 때는 참말로 볼만 했다. 뛰면서 우렁차게 외치면서 서로 권하고 서로 나누면서 참말로 가슴 벅차게 뛰었어야. 그 때는 그맀는디……. 너는 잘 모를 것이다. 느그 아부지 당헌 일을 안다고는 히도 다 모를 것이고, 그 날도, 그 아픈 설움도 너는 모를 것이다. 너그만 아픈 것이 아니고 동네 사람들 마음 한 구석 다들 아프니께 서로들 입을 다물어버렸지. 약속이라는 것도 없었는디……. 다들 그맀어. 전쟁이 나도 그런대로 지나가고, 오른쪽으로 섰는가 왼쪽으로 섰는가 험성 따져 묻는 동안에도, 그리서 이런 사람 눈에는 죄도 없는 사람들을 한 데 묶어 총으로 쏴불던 시절에도 우리 동네는 큰 피해 없이 지내 갔는디……. 어쩐다고 그 해는 그렇게 그랬는지, 언진가ㅡ는 한 번 하늘에다가 삿대질을 험성 물어볼라고도 했구만. 아퍼야. 멍든 가슴이 무시로 아퍼야.”

  “……아버지.”     


  소포나루 사람들 걸군농악 굿쟁이들이 풍물을 잡으며 마을로 들어서고 있었다. 나루터 마당에서 한 판을 크게 놀던 사람들이 당산에 들어 제를 모시고는 경건한 표정으로 나루터 마당까지 오더니 이내 걸음을 옮겨 마을 사람들 붙어사는 고샅으로 들어선다. 집집마다 들어서 풍물을 치며 액을 쫓으려는 것이다. 상쇠영감을 두고 늘어선 쇠잽이들을 둥글게 싸안은 징잽이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는 가락으로 몰아댄다. 쇠의 높은 소리를 헝겊으로 둘러싼 채를 들어 치는 징잽이들이 감싸 안는다. 정갑수의 꾀죄죄한 얼굴은 잔뜩 긴장한 모양으로 굳어 있는데, 너부데데한 얼굴 길쭉하게 흘러내려 소를 닮은 덕춘이는 빙그레 웃으며 징을 친다. 저도 모르게 오르는 흥인가. 사자의 탈을 쓰고 어정거리는 놈처럼 두 발을 들었다 놨다 하며 흥을 퍼 올리는 사이사이로 무릎이 구불거린다. 그럴 때마다 무릎 관절이 툭툭 볼가지다 들어간다. 벌쭉 벌쭉 덜렁거리며 춤을 춘다. 

  우중충하게 흐린 하늘에서 진눈깨비 같은 것이 날린다. 눈이랄 것도 없는 것이 먼지보다 차갑게 날리다 만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람들은 굿을 친다. 박명관이의 태평소 날라리 소리가 꽹과리 소리에 갇혀 들려오지 않는다. 두 갈래로 나뉜 길의 중간에 버티고 서서 불어대는 소리가 징소리에 묻힌다. 꽹과리와 징이 장구와 소고의 소리를 보듬어가며 어우러지게 하는 동안에도 어쩐지 태평소의 소리는 잦아들어간다. 그런 중에도 장만상이의 늙은 어머니는 너울너울 춤을 춘다. 훨훨 나는 갈매기 되는 춤을 춘다. 두 팔을 들어 올렸다 내렸다 하며 지화자 좋은 춤을 춘다. 머리는 백발에 가까운 노인이 온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춤을 춘다. 대문 앞까지 나와서 자꾸만 처져 내려가는 허리를 되는대로 펴고서 춤을 춘다. 

  “아이, 만상아, 너는 어찌서 긍께 그 잘난 허우대로 맨날 창부만 허냐? 아이, 긍께 넘 허디끼 장구나 치고 징이나 치고 놀먼 넘 보기도 좋고 좀이나 좋냐? 아이 꽹과리는 냅두고라도 북도 있는디, 노상 쭈글치고 앉아 갖고는 똥싸는 놈맹이로 그라고 죽상을 씨고 그러냐아? 긍께 니가 장만상이지 장죽쌍이냐? 어허……. 아그 이놈아……. 이름이 아깝다아.”

  장만상이 그 꾀죄죄한 모습을 볼 때마다 잔소리 타박이 늘어지던 노인이 이 아침에는 흥겨운 가락을 타고 춤을 춘다. 발을 들었다 놓으며 이렇게 돌고 저렇게 돌고 박수를 치며 놀아도 매양 그 자리다. 구부러진 허리에 마디마디 쑤시지 않는 곳이 없다며 우는 소리 섞어 푸념을 늘어놓던 노인의 다리 사이가 둥글게 벌어진다. 젊다던 시절이 고작해야 몇 년 전일 텐데 마름모꼴로 벌어지는 다리는 관절염이 씨 뿌리지 않은 밭에 풀 돋아나듯이 번져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 좋기로는 이보다 더할 수 없다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장만상이네 대문 앞에 밀어닥친 굿패들이 위협을 한다. 땅 따당~ 땅 따당 땅 따당 땅땅~ 따다다 땅 따당 따다다 땅 따당~ 따다다 땅따당 땅땅~ 솔부엉이 같은 놈이 자꾸만 대문 안으로 들어서려는 동작을 한다. 벙거지 위에 꽂힌 부들상모가 끄덕끄덕 내젓는 고갯짓에 따라 너울거린다. 둥근 테 안경이 얼굴의 절반을 덮어 누가 보아도 부엉이 상호를 한 놈이 씨익 웃어가며 자꾸만 들어서려 한다. 장만상이 늙은 어머니 와우리댁이 환하게 웃는 낯으로 갈매기 춤을 추며 쫓는다. 아들놈 만상이랑 늘 붙어 다니는 놈이 씰룩씰룩 웃어가며 돌아서려다 다시 발을 크게 뻗어 밀고 들어오려는 자세를 취한다. 와우리댁이 온몸으로 막아선다. 문 바깥에 머물고 있는 좋지 않은 기운들은 사람들 치는 굿소리에 놀라 달아나고, 집 안에 머물고 있던 좋은 기운은 꽉 붙들어 새어 나가지 않게 해야 한다. 그리고 올해의 큰 복은 정중하게 받아들여 모셔놓아야 하는 것이다 윗대 조상들이 해오던 습속을 그대로 이어받은 와우리댁의 춤이 한 치의 벗어남도 없는 자리에서 훠이 훠이 한 마리 높이 솟은 새가 된다.      


*대문사진: 진도소포걸군농악(출처: Daum 이미지)

매거진의 이전글 3화. 순령수 창부를 추포하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